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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의 추억

게시일
2010-06-23

입학식



초등학교 입학식 코 닦는 손수건

가슴에 매단 하얀 손수건

지금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유치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나아가 기초적인 학습도 이미 사교육에서 마치고 학교에 입학하지만 우리가 학교에 입학하던 때는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던 시절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행동하고 배우는 모든 지식을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육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서 입학식을 하는 것으로 학창시절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풍경은 커다란 운동장에 모여서 일렬로 키 작은 학생부터 순번이 정해진다.
지금은 학생들의 순번은 키와 상관없이 가나다 순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수도 지금은 생각도 못하겠지만 한반의 서울에서는 70명을 넘어섰고, 반수도 남자가 7반까지 있었고 여자아이들은 조금 적은 6개반으로 총13개 반으로 기억된다.

우리반 줄의 맨 앞자리에 서 계신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고, 그러면 교장선생님의 입학 축하의 말씀이 시작된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서 나라에 기둥이 되라’ 는 훈시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입학식 날 한쪽 가슴에는 학년반이 적힌 명찰을 달고 그 아래에 코 닦는 하얀 손수건을 달고 서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조차 힘들지만 70년대에는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가슴에는 어른들의 훈장처럼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서 입학식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다.
그 당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코를 그리 질질 흘렸는지 모르겠다.

코가 나오면 옷소매로 스윽 닦으니 새까맣게 반질반질해졌고, 엄마는 빨래하는데도 힘들어서 수건을 달아 주었던 것 같다.
지금의 가방에 휴지나 물휴지까지 넣어준다니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 시절엔 고급 손수건은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당시에는 나일론 재질의 옷이 많아서 코를 닦고 나면 기름칠한 것처럼 유난히도 옷깃은 까맣게 번들번들 거렸다.
나일론 옷은 질기고 바람을 잘 막아 주는 반면에 불에 약해서 추위에 불 가까이 가면 쪼그려 붙어서 옷을 망치기 일쑤였다.

신발은 타이어가 그려진 타이어 표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하얀 고무신은 주로 어르신들이 신고 다니시었던 것이다.
당시 도로는 진흙길이라 아이들은 때를 많이 묻히고 험하게 신어서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전쟁 후 미국 등 우방국으로부터 지원받아서 생활하는 열악한 환경이었기에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다.
원조받은 옥수수가루나 우유도 분말로 된 우유를 지급 받을 때도 있었고, 딱딱한 덩어리 우유를 학교에서 지급받던 시절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하던 시절이라 학교급식으로 옥수수 빵 덩어리를 지급받으면서 ‘국민학교’를 다닌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교실풍경



칠판과 분필


교실풍경


교실풍경


겨울철 교실풍경


겨울철 쉬는시간 난로앞


수업시간


시험시간


점심시간




점심시간


점심시간


도시락




난로위 도시락 먼저놓기

둘째 시간이 끝나면 양은도시락들이 난로 위에 앉는다. 서로 자기 도시락을 밑에 놓으려고 실랑이를 벌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수업 중에도 밑에 있는 도시락의 밥이 탈까봐 아래 위를 번갈아가며 바꿔 놓으셨다.

넷째 시간 수업이 끝나는 종을 치면 우리들은 우르르 몰려 내 도시락을 찾아 옹기종기 앉는다.
도시락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장아찌, 콩자반, 멸치, 단무지, 어묵무침 등등 금방 훌륭한 상차림이 되었다.
어쩌다 계란부침이나 소시지를 싸온 아이, 그리고 시금털털한 김치만을 싸온 아이는 돌아앉아 혼자 먹기도 했다.

반찬을 넣어 도시락을 위아래로 흔들어 비벼먹는 아이, 노랗게 누른 밥에 주전자의 따끈한 보리차를 부어 깨끗하게 긁어먹는 아이.. 밥이 적은 듯한 아이는 남의 밥을 한 숟갈씩 더 퍼가기도 했다. 밖에는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우린 난로 옆에서 추운 줄 몰랐다.

지금은 추억의 도시락이 된 노란 양은도시락, 이맘때만 되면 그때 그 교실이 그리워진다



양은도시락



난로와 도시락


추억의 먹거리



고구마, 감자, 주먹밥


띠기

허술한 사과궤짝 같은 것 위에 얇은 철판 따위를 깔아 놓고 그 옆에는 연탄불의 화덕 하나가 피워져 있었다.
그 화덕의 주인장은 우리네 꼬마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아저씨였는데 하지만 그 아저씨는 띠기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달인이자 동시에 장인(匠人)의 경지에 다달은 능수능란한 솜씨의 소유자였다.

'달고나’로도 불리우는 띠기는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불 화덕에 찌그러진 양은국자를 올려놓고 설탕을 넣어야 한다. 그리곤 연탄불에 녹기 시작하는 설탕을 꼬챙이로 저어주면 설탕가루는 암갈색으로 녹아든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그처럼 녹아든 설탕가루가 시커멓게 변하기 바로 직전에 잽싸게 꼬쟁이 따위로 소다를 한 번 묻혀 국자에 털어 넣어야 하는 때문이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또한 바로 ‘띠기 달인’의 기량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까닭이다. 설탕과 소다가 만나 풍선처럼 마구 부풀어 오른 띠기는 국자를 돌려준 뒤 부글부글 끓어 넘칠 듯 말 듯 할 때 잽싸게 사과궤짝 위에 깔아놓은 철판에 패대기를 쳐야 하는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띠기가 모두 굳기 전엔 눌림판으로 그 내용물을 눌러주고 띠기 각자의 모양을 내는 A자와 B자, 그리고 별모양 등을 서둘러 찍어내야 한다. 띠기를 사랑했던 지난 시절의 나는 그 띠기만 먹어도 금세 부풀어 오르는 부자가 되는 듯 했다. 마치 띠기가 순식간에 풍선이 되는 것처럼 그렇다

먹을거리가 풍성해져서 이제 띠기는 구경하기조차도 어렵다. 어제처럼 지나간 그 옛날의 추억까지를 덩달아 끄집어내는 장소가 아니라면 더 더욱 그렇다.


 

벌받기



잘못했어요. 선생님


국민교육헌장 외우기



국민교육헌장

'국민학교'에서 누구나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 국민학생들뿐이 아니었다. 중고교생들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모든 교과서 앞머리에 실리기도 했다), 입학시험과 국가고시 심지어 입사시험에도 사실상 의무적으로 관련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을 피할 길은 없었다.

국민교육헌장의 시대는 민주보다 반공이 앞서고(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 시대였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국민교육헌장은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공식적인 기능이 사실상 소멸됐다. 국민교육헌장 전문(全文)을 보려면 이젠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한다. 나의 발전이 나라의 융성의 근본이 되는 시대가 비로소 열린 것인가.


운동회



운동회(오재미 던지기)


덤블린이라 했던것 같은데..기계체조


성적표와 건강기록부



건강기록부


성적표



졸업앨범





교과서



교과서들


사회과지도






풍금이 있는 풍경



음악시간


풍금


민방공훈련



요즘 서해에서 북한의 포사격으로 긴장이 고조되어, 서해에서 한번 붙을 것 같은 분위기 인데, 학교다니던 시절 민방공 훈련 같은 것이 있었다. 싸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고, 확성기에서 경계경보, 공습경보에 맞게 비행기 소리, 폭탄터지는 소리 등등 실감있는 음향을 동원하여 방공훈련을 하였다.

교실에서 나와 주로 숨었던데는 학교 옆의 개천옆 나무아래 였던 것 같다. 귀를 막고, 땅에 엎드리고...등등...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니 옛날 북괴의 남침을 대비해 훈련하던 기억이 다시금 나게 한다.

기타 추억의 풍경들



책가방


공부방 풍경


그림일기


시험지가 찍혀 나오던 교무실의 등사기

선생의 길



2월19일 사랑하는 딸이 초등학교 첫 발령을 받았다
선생님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공직자로서
모든 학생들에게 참교육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또한 학생들이 나중에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남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며
옛날 국민학교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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