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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80년대 말 노동가요

게시일
2010-04-22

1. 87년 항쟁과 80년대말 민중가요의 급성장
 
  87·88년부터 시작하여 90·91년 경에 마무리되는 이 시기에 민중가요의 두개의 대중화가
실현되는데 하나는 대학생·지식인을 중심으로 하던  민중가요가 노동자대중을 비롯한 기층
민중으로까지 확산되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직된 대중을 중심으로 하던  민중가요
가  대중문화 공간의 미조직 중간계층으로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예 :노찾사,노래마
을)  또한 음악운동집단이 수적으로 늘어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성향이 다양화되었
다는 점도이 시기의 성과로써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90년 {민족음악협의회}의 창립이가능
해지게 되었다.
 
2. 노동가요의 의의
 
  ⑴ 근대 음악사, 노래사 이래  최초로 지식인을 중심으로 하던 진보적 노래문화, 노래운
동(음악운동)을 기층민중으로 대중화하는 데 성공.
    - 물론 여기에는  7·8·9투쟁과 함께 이루어진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기층민중의 각
계급계층운동이 광범위한 대중운동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에 크게 힘 입은 것이다.
    - 이 시기 이러한 기층민중으로의 대중화를 성공시킨 것은 노래와  연극으로민족예술운
동의 중요한 성과로 이야기될 수 있다.
 
  ⑵ 노동자 대중의  경험과 인식, 정서 등을 담은 작품적 성과를 남김으로써민중가요의 자
산을 풍성하게 함.
 
3.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기간의 노래
 
  ⑴ 이 시기 주로 불렸던 노래들의 경향
 
  87년 이전까지는 노동자 대중이 대중적으로 노래를  부를 공간이 없었고  작품의 생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노동가요라는  독자적인  노래문화가만들어질 여건이 이루어지
지 않았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노동자대투쟁에서 광범위한 투쟁공간에서 불려질  노
동가요가 제대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민중가요는 학생과 지식인 중심의 민중가
요였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도 소시민적 지식인적 티를 벗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이 시기 노동자대중에게 대중화될 만한 작품이 되지 못했다.
  이 시기  불렸던 노래들은 주로 행진곡풍의  노래들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늙은  군인
의  노래>,<노동해방가>,<광주출전가>,<진군가>,<동지> 등이 있다.
  그 외에 대중가요들이 재해석되어 불리기도 하고, 개사곡이 만들어져  노래의 공백을 조
금이나마 메우고자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택시노조에서는 <노란 샤스의 사나이>, 광산노
조에서는 군가인 <전선을 간다>를 개사한 <막장을간다>등이 있었다.
  또한가지  이시기는 투쟁기였으므로 <사노라면>,<불나비>와  같은 일상적인분위기의 노래
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불리워지지 않았다.
 
  ⑵ 이 시기에 광주  지역의 노래가 많이 불려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대학생의 노래들 중에서도 주로 서울지역에서 만들어졌던  <껍데기를벗고서>,<전진
하는  새벽>,<선봉에  서서>,<선봉에서>,<민족해방가>등은 상대적으로 많이 불려지지 않았
다. 이러한 이유는 이들 노래들이 가지는  인식의 태도나 정서의 미묘한 질적 차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서울지역에서  만들어진 대학생 작품들의 경향을 보면 대중보다 앞서나가
는 사람, 선봉, 전위의 인식을 주로 담고 있다. 그래서 전위적 분위기를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었고 ('가자 가자 가자  혁명의 전사들아 /가자  가자 가자 피의 전선으로' 등의 관념적
과격성)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전위가 가지는 남다른 부담감 때문에 생기는 자기부정의 괴로
움이나 피 토하며 통곡하는 듯한 특유의 비극적 정서가 있다.
  즉 이러한 정서는 역사의 당위적 흐름과 자신의  약심에 따라  어려운  삶을살고자 하는
지식인들이 갖게 되는 치열함의 소산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불건
강한 복합심리를 포함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노동자들에게 불려졌던 노래들은 이와는 달리, 투쟁적이면서도  전위적이
지 않고, 지식인 전위가 만들어내는  관념적 과격성이나 자기부정의 불필요한 긴장감  같은
것이 없고, 감정의 표현이 외향적이며 편안하다.
  그리고 광주의 작품들에 이러한 대중적 특성이 일찍이 있었다.
 
4. <파업가>,<노동조합가> 노동가요의 시작
 
  ⑴ 88년 가을 김호철  <파업가>,<노동조합가>의 발표
 
  발표와 함께 전국적인 빠른 확산과 호응으로 88년  말, 89년 초부터는 새로운 노동가요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동지여 내가 있다>(마산),<딸들아 일어나라>,<단결투쟁가>,<진짜노동자2>,<해방역에  닿
을 때까지>,<노조연대가>,<총파업가>(이상 김호철) 등등
 
  ⑵ 이전과는 다른 작품의 질
 
  이 시기의 노래들은 80년이래 민중가요의  단조행진곡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87년 이래
의 노동자의 대중투쟁의 경험과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 투쟁을  관념속의 당위가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구체적이며 생생한  표현하고 있다. (전 시대의 작품들과 비교해보자)
'피 묻은 작업복은 파업의 깃발이다', '지키련다 동지의 약속, 해골 두쪽되도 지킨다', '너
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이러한 표현들 속에는 지식인의 관념적 과격성이나 지식인적 기반의 허약함을 부정하고자
하는 복잡한 비극적 정서가 없고 투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낙관성과 역동성, 자
신에 대한 건강한 자긍심이 담겨있다. 또한  좀 더 살펴보면 투쟁으로 자신의 몫을  찾아야
하며, 그것은 역사적 당위라는 초보적계급의식의 형성에 뒷받침되는  것이기도 하다. 
  음악적으로는  80년대 중반의  섬세함이 사라지고 마치 80년대 초반의 행진곡을 연상시키
는 선 굵고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음악적인 퇴보가 아니라 오히려 음악적
인 단순화와 더불어 새로운 질의 내용성을  담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질적 변화를 이루어냈
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⑶ 행진곡의 주도
 
    이 시기에 노동가요가 행진곡풍의 투쟁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의 노동자
소재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연민주의  극복한  <단순조립공>,<짤린 손가락>,<공장 가는
길>(이상 김호철),<나의 이야기>,<친구야>,<서울에서 살꺼야>(이상 안혜경)등의 일상가요들
이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  민주노조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조건 개선투쟁,  임금인상투쟁,
민주노조설립투쟁 등 투쟁이 막바로 벌어졌기  때문에,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이란
이러한  투쟁공간밖에 없었다는 것이 행진곡풍의 가요들이 주로 불렸던 큰 이유일  것이다.
 
  ⑷ [혜성같이 나타난 김호철]의 존재가 말해주는 몇 가지 사실
 
  아쉽게도 이전까지의 노래운동  집단들이 새로운 노동가요의   생산에 완전히무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87년의 노동가요 부재의 공백은 빨리 메워지지않았고 김호철이라는  개인
을 부각시켰다.  마산  등에서 몇 편의 작품이 만들어졌으나 그렇게 그 수요를 다 채울 수
는 없었고 상대적으로 그 공백을  메운김호철의 존재는 노동가요를  대표하는 것으로 부각
되었다.
  지식인인 김호철이 당시 노동자  대중에게 호응을 받는 노동가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험이 많이 작용했다. 즉 경험을 통해 노동자의  체험·인식·정서·
인식태도·예술적 관행 등을 익힐  수 있었다.
  이후 89년 하반기에 들어서서 노동자 대상의 활동(창작,공연과 노래교육)을전담하는 노동
가요 전문패가 만들어지게 된다. (노동자노래단, 예울림,  소리새벽 등)
 
5. 89년 하반기부터 90년까지의 변화
 
  ⑴ 일상가요와 기타 서정가요의 시작.
 
  아직까지는 행진곡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민주노조의 설립으로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는 일상공간이 창출되었고, 일상가요와 기타 서정가요라는 새로운 종류의 노래가  필요해
졌다.
 
  ⑵ 일상가요
 
  <포장마차>,<사랑과 행복>,<진짜 노동자3>,<참사랑>,<부모님께>(이상 김호철),<내가 왕이
다>,<서울에서 평양까지>(이상 윤민석),<거꾸로 돌아가는 세상>,<달동네 부푼 꿈>(이상  이
건),<내 사랑 민주노조>,<우리들의 사랑은> (이상 조민하) 등.
  이들 노래들은 노동자의 일상 체험과 정서를 담고 있으며 일상적  낙관성과역동성을 획득
한 것들이다. 이러한 일상적 낙관성과  역동성은  투쟁적 낙관성·역동성과 상호 전화하고
변증법적 상생하는 관계를 갖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노래들은 여태까지 민중가요에서  잘
쓰지 않았던 통속적 대중가요의  어법을 사용하면서  이를 민중가요 안으로 끌어들이게 된
다. 이들 노래들이 통속적대중가요의 관행을 빌어오고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데, 이는 '익숙함의  대중성'에  기대어 대중가요의 불건강성에 말려들어간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는 여태까지 민중가요가 어떻게 기존의 음악양식들을 계승·혁신해왔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인듯 하다 대중가요 어법을문제삼고 있지만 실상 지식인
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의 어법 (예를 들어 포크), 역시 불건강한 고급음악의 어법으로 쓰
여진 작품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오로지 저학력의 대중들이 향유해 왔던 노래들에 대해
서만 비판하는 것은지식인의 노래적 취향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며  통속적 대중가요의 어
법을사용하는 노래 중 성공한 것(민중음악의 자산으로 획득하게 된 것)과 실패한것의  구분
없이 모두 비판하는 것 역시 그 비판이  원칙없는 취향에 근거하고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⑶ 서정가요
 
    <끝내 살리라>,<열사의 그  뜻대로>,<꽃다지>,<골리앗의 그림자>(이상 김호철),<열사가
전사에게>(최준 작사,김성민 작곡)
    주로 단조 스탠다드를 받아들인 단조 서정가요의 전통을 따른다. 그러나 이전의 민중가
요에  비해 훨씬 통속적 가요의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 많다.
 
  ⑷  행진곡(투쟁가)의 다양화  -  전술적 투쟁가의 등장
 
  전술가요란 그 시기 투쟁과제를 담은 노래로 대표적으로 <전노협 진군가>,<구속동지 구출
가>,<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이상 김호철),<연대투쟁가>(윤민석)등이 있다.
 
6. 91년부터의 변화와 새로운 모색
 
  ⑴ 91년 상반기 노동가요의 약화
 
    이전과 같은 엄청난 호응을 동반한 인기곡이 없고 행진곡의  퇴조가 두드러진다. 특히
전술적 행진곡의 인기가 떨어지고 일상가요도  시들해진다. 공권력투입, 대량구속, 자본철
수, 공장이전, 생산감축과 감원 등 노동운동 탄압으로노조가 현저하게 약화되는 등  대중운
동의 정체 내지는  침체가  뚜렷해지면서투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럴 때 '단결','투쟁','총파업' 등의 주장을 담은 선굵은 투쟁가는 호소력을
가질 수 없었고, 또한 가볍고 즐거운 낙관적 일상가요를 부르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려운시
기였다.  이 시기 상대적으로 노래들은 <철의  노동자>,<단결주쟁가>,<진짜노동자2>등 투쟁
의 주장보다는 '멋있는 노동자'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는 노래들이 많이 불렸고, 선율적이고
선이 가는 노래로 이례적으로 <나의 사랑 전노협>이 많이 불렸다. 
 
  ⑵ 91년 하반기부터의 의도적 생산
 
  ① 슬픔과 절망에 대한 위로, 자신의 노동자로서의 삶,지나간 2·3년동안의투쟁을 반추하
   며 성숙하게 어려운 시기를 버텨가는 의지적인 노동자의 모습을부각시키는 노래  
  - <희망의  노래>, <누가 나에게 이길을>, <다시 한번 투사가 되어>,  <사람이 태어나> 
  ② 이전의 투쟁가를 2·3년간의 투쟁을 담은 느낌으로 편곡하는 시도
  - <단결투쟁가> (꽃다지) 
  ③ 이전보다 더 개인의 느낌이 강해지고 개인의  내면을 깊숙이 표현한   섬세한 감정의 
   노래들이 이후 큰  호응을 얻게됨  
  -  <민들레처럼>,  <동지들앞에  나의 삶은>, <전화카드 한장>(이상 조민하),<편지3> (윤
   민석 작사, 김신애 작곡),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유인혁) 등.

 

댓글 2
  • 김민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최원섭
    즐거운 점심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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