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최종술 기자]아이가 자랑스레 내민 시험지를 훑어보다가 입가에 웃음이 터졌다. 아이가 한 답도 답이려니와 질문이 재미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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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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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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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이다.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여 한 가지 써 보세요.'
아이의 답은 '꽃에 물주기'였다. 내가 이 질문을 받으면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청소, 이불정리, 아이들과 놀아 주기 등일 것이다. 물론 '꽃에 물주기'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돌아올 일도 아니거니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면 이런 저런 일들로 꽃과 친해지는 일은 거의 아내나 아이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어찌 보면 꽃들이 불쌍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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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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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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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은 '학교에서 공부시간에 바른 행동은 어느 것입니까?'였고 다섯 가지 보기가 주어졌다.
① 친구가 발표할 때는 잘 듣는다. ② 토의시간에는 혼자 책을 읽는다. ③ 공부시간에 친구와 장난을 친다. ④ 공부 시간이 시작된 후에 수업 준비를 한다. ⑤ 공부시간 중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않는다.
물론 답은 ①번이다. 이 질문의 보기를 보면서 이런 지문을 생각해낸 선생님은 무슨 생각에서 이런 지문을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니 수업 중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공부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공부시간 중에 선생님 말씀 안 듣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의 시각에서 볼 때 너무 뻔한 보기들이라 답을 골라내기가 쉽지만 아이의 눈에서 보면 또 다를 것이다. 이 질문에 답을 쉽게 찾는 어른들은 사실 교과서대로 행동을 옮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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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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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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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까지는 평범하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질문은 '스스로 하는 어린이'와 '시켜서 하는 어린이' 중에서 어떤 어린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요? 이유도 써보세요'였다. 아이는 '(1)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 어린이? (공부가 재미있고 신나는 아이!) (2) 그 이유 (재미있고 신나면 머리가 잘 돌아가니깐~)'라고 대답했다. 재미있지 않는가?
다른 사람 특히 성인들이라면 어떤 답을 했을까? 필자가 생각한 정답은 '(1)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는 어린이? '스스로 하는 어린이' (2) 그 이유 (공부를 억지로 하지 않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 정도 아닐까, 생각했다.
표현에서 아이다움이 배어있어서 한번쯤 웃음 짓게 만들었다. 꾸미거나 가식이 없다. 공부가 재미있기 위해서는 자발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간에는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보면 대부분 자긍심이 강한 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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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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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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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학교에서 공부시간 이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한 가지 써 보세요'란 질문이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휴지 줍기도 되고 친구와 친하게 지내기, 삐뚤어진 책상 줄 바로하기, 어려움에 처한 친구 도와주기, 저학년 동생 돌봐 주기 등등
아이는 답을 '책 읽기(학습문고 스스로 읽기)'라고 하였다. 필자가 초등학교 저학년 땐 수업 이외엔 '나머지 공부'란 것이 있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용어일 것이다.
나머지 공부의 내용은 글자 익히기였다. 시골엔 특히 유치원이 없어 지금과 달리 한글을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어서까지 모르는 학생이 반에서 두세 명은 되었다. 그 사람들도 성인이 된 지금은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당시엔 그랬다. 그런 사실이 크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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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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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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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6번 문제.
'다음 중 학용품을 바르게 사용하는 어린이를 모두 고르세요.
① 정민-외제 학용품만 사서 쓴다.
② 수영-몽당 크레파스는 모두 버린다.
③ 영진-공책을 찢어서 비행기를 접는다.
④ 동진-몽당 연필은 깍지를 끼워서 쓴다.
⑤ 미영-남은 색종이는 모아 두었다가 다시 쓴다.
독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답을 물어 보고 싶다. 정답은 물론 4번과 5번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엔 공책도 귀하고 연필도 귀한 시기였다. 물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예외일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공책을 찢어서 비행기를 접는다는 행위는 상상을 못하거니와 엄청 혼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연필도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 껍질에 끼워 쓰는 것은 당연지사요. 흑연의 질과 종이의 질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저질이라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글씨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들이 혼란스럽기도 하겠다. 몽당연필은 깍지에 끼워 쓸 필요성을 잊은 지 오래일 테고 색종이도 자투리를 모아서 다시 쓴다는 것도 같은 고민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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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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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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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7번. '물건을 아껴 쓰면 좋은 점을 1가지만 써 보세요.'
그 답은 '자연이 좋아진다'였다.
재미있는 답이었다. 요즘은 옷이 낡아서 못 입기 보다는 커서 못 입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싫증날 경우 다시 구입하지 않는가?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과거보다는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음이 틀림없다. 쓰레기가 많아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고, 생산된 물건을 팔지 못해 고민하는 물질 풍요의 시대이다. 계층간 격차는 벌어지고 없는 자는 굶고 허덕이며 있는 자는 마구 쓰고 버리는 세태인 것이다.
자연의 중요성은 인류 모두에게 있으며 그 책임 또한 인류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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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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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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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 질문.
망가진 물건을 사용해 본 경험과 그 때의 느낌을 써 보세요.
(1) 경험 (책상에 누가 낙서 했는데 그 책상을 썼다.)
(2) 느낌 (왜 저랬을까?)
배꼽을 잡았다. 느낌이 허무하기도 하고 솔직한 대답 아닌가? '왜 저랬을까?'란 답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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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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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최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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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9번.
우리가 함께 쓰고 있는 학교 물건을 한 가지 쓰고, 그 물건의 올바른 사용 방법을 써 보세요.
(1) 함께 쓰는 물건 : 책상
(2) 올바른 사용 방법 : 낙서를 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매우 이기적이라 한다. 자기 것은 잘 챙기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한다. 일선 고교 교사로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요즘 학생들의 사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 이야기인즉, "교실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요즘 학생들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자기 자리는 자기가 치우기로 했더니 남의 자리에 버리는 것이었다. 또 기가 막히는 것은 청소시간이 고민이 있는데 청소당번 정하는 것이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인데, 학생들은 제일 쉬운 유리창 닦기만 하려고 하고 바닥청소는 모두가 꺼려해서 당번을 잘못 정했다간 항의에 시달려야 한다. 한번은 청소시간에 도망가는 친구를 불러 주의를 줬더니 오히려 선생님에게 대들기를 하여 벌칙으로 3개월을 청소당번으로 시킨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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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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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0번 문제.
친구와 물건을 서로 바꾸어 쓰면 좋은 점을 한 가지 쓰세요.
(공짜로 딴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
재미있는 답이 아닌가? 여러분도 이 시험을 쳐보라. 그리고 아이들의 눈높이를 측정해보라.
/최종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