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교장선생님이 계신다.
자식들도 훌륭하게 장성했고 경제적으로도 유족하게 살고 계신다.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보인다.
그런데 두 부부가 몇십년을 두고 갈등하며 풀지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변기 뚜껑을 닫아놓느냐, 열어놓느냐 하는 문제였다.
부인은 닫는 쪽, 남편은 열어놓는 쪽이다.
그분들의 대화는 이렇다.
-볼일 보고나면 뚜껑을 꼭 좀 덮어놔요, 냄새나는데..
-그거 뭐 깨끗한 것도 아닌데 손대고 꼭 열었다 닫았다 귀챦게 해야돼?
그냥 열어놓으면 되지 뭐.
-그냥 열어놓을 바에야 뚜껑을 뭐할라꼬 달아놨겠어요
그건 닫아야되는 거예요, 정말..
이 논쟁을 수십년했단다.
볼일 볼 때마다 아내의 잔소리가 생각나서 이젠 화가 받쳐서도 일부러 열어놓는다.
그러면 또 어김없이 아내가 확인하곤 따발총을 쏘아댄다.
그래서 화장실만 갔다오고 나면 뒷통수가 아프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유권해석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유권해석? 누구에게...그러자 당연히, 양변기를 만든 사람이란다.
어디 수소문해서 양변기를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 그래 그 사람의 생각은 정말 어떤지 물어봐야겠다고 씩씩대신다.
이제 문제는 다른 국면을 달린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백과사전을 뒤져서 전 세계 어느나라의 어느 구석에서 양변기를 처음 만들었는지, 그가 누군지 알아내야 한다.
만약 그 사람이 유럽사람이라면 그리고 다행히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그분에게 전화를 해서 - 할려면 영어작문이 필요할 게다. 미리 여러문장을 쓰서 전화통화에 지장없도록 고증을 받아놔야 할 게다 - 그분의 고견을 들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판정이 날 게다.. 그 전까지는 논쟁이 그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단다.
그래서 손님으로 간 우리에게조차 어느 게 맞는지 제발 판정해달라고 하신다.
우리에겐 웃음거리지만 그분들로선 몇십년 동안 풀지못한, 스트레스 팍팍 쌓인, 사법고시보다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우린 치약사건을 잘 안다.
이미 그건 고전에 속한 얘기다.
남편은 치약을 끝에서 부터 꼬옥 꼬옥 눌러서 짜야된다고 ...
부인은 가운데 푸욱 눌러서 짜고 다음엔 꼬리를 푹 눌르기도 하면서 '자유'해도 된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그 집은 화장실에만 가면 상대가 먼저 쓴 치약의 꼬락서니를 보고 분통을 터뜨리고 고함이 터져나오고 그래서 아침부터 항상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치약 한 개 더 사서 하나는 부인용, 또하나는 남편용..하면 되는데...감자이야기도 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남편은 감자를 삶아먹을 때 항상 소금에 찍어 먹었다.
결혼해서 보니, 부유한 집에서 자라온 아내는 감자를 아까운 설탕에 찍어먹고 있었다.
그것 갖고 싸운다.
너거는 배불러서 설탕에 찍어먹어 왔는지 모르겄지만...
졸지에 집안 싸움이 되고 나중엔 자존심 싸움이 되고...그래서 이혼을 하려고 법정에 갔다.
사연을 다 듣고난 판사가 말하기를
'나는 된장에 찍어먹는데..'
전부 비본질의 문제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모두 비본질에 매여있다는 점이다.
정말 그렇다.
우린 이렇게 비본질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치고박고 싸운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 본질인지 비본질인지도 까맣게 잊고 그저 싸우는데만 열을 올린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비본질도 참 중요하다.
비본질을 결코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항상 사고는 비본질에서 난다...어쩌면 이게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도,
비본질이 본질을 휘저을만큼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까진 수십년이 걸렸다..
그래서 정말 치약 하나 짜는데도 신경을 써야하고, 감자 하나 먹을 때도 방심해선 안된다.
비본질이라고 우습게 생각하다간 정말 우스운 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비본질 때문에 본질이 가리워지면 안된다는 것을.. 그것만큼 안타깝고 억울한 일은 없다는 것을..
사소한 비본질에서 생긴 조그만 문제 때문에 중요한 본질을 못보고 본질이 가리워지고 본질이 매도당하는 안타까운 예를 우린 너무나 많이 봐왔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난 예수가 좋아 교회에 간 적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보고 다시는 예수를 안믿기로 결심했다.'
그 역시 안타깝게도 비본질 때문에 한평생 본질을 볼 수없었다.
일찌기 어거스틴은 말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in necessaris unitas),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in unnecessaris libertas),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in omnes charitas)' 이라고...
비본질 때문에 본질을 놓치기 쉬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지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