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와 동반자 되려면 뭣보다 경영 투명해야”
- 게시일
- 2006-08-17
한 기업이 있다. 재벌기업 소속으로 한때 잘나갔지만, 수익성 악화로 ‘일등주의’를 표방했던 그룹에서 ‘계륵’같은 존재였다. 결국 모그룹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 회사를 외국 기업에 팔아넘겼다.
다른 기업이 있다. 6년 만에 세계시장 점유율이 4%에서 8%로 올라간 회사, 인수 1년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이 회사는 처음 언급한 회사와 같은 곳, 볼보건설기계코리아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학자들이 연구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자주 꼽힌다. 짧은 기간 동안 한 기업이 겪을 수 있는 희망과 절망을 골고루 맛보았을 뿐 아니라 노사화합, 제조업 부흥 등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11일 서울 한남동 볼보 사옥에서 만난 에릭 닐슨(47·사진) 사장은 이 회사의 성공 비결에 대해 ‘투명성’과 ‘집중’이란 단어를 제시했다.
“상당수 한국 기업들은 회사를 불투명하게 경영하고, 노동자들을 동반자로 보지 않습니다. 이긴 자가 다 가져간다는 인식이 팽배하니 노사갈등이 격해질 수밖에 없지요.” 새로 만들어진 노조 대표자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경영진이 “축하한다”며 “스웨덴의 노동운동을 보고오라”고 등을 떠민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재무책임자로 있던 닐슨은 “노조가 파트너로 인정받는 것의 핵심은 경영의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월별 실적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볼보건설기계는 인수 뒤 10여종의 제품군을 ‘굴삭기’ 하나로 과감히 정리했다. 굴삭기 하나에 연구개발 인력 등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자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고품질 제품이 나왔다. 삼림·해안용 등 고부가가치 굴삭기도 발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다.
볼보건설기계의 기업문화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의 권한과 한계가 명확하고, 그 안에서 자율성이 보장된다. 닐슨은 “우리 회사에는 1500명의 경영자가 있다”며 “모두가 자기 분야와 공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닐슨 사장은 한국이 더이상 개발도상국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세계 10위권 규모의 경제에, 제조업 임금 수준도 스웨덴에 버금갈 정도로 올라온 마당에 ‘사고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세계 10위권 규모의 경제에서 6퍼센트 이상의 고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닐슨은 또 “한국의 대형 사업장이 70~80년대 북미를 연상케 한다”며 “정부가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고, 회사 쪽이 투명성을 갖고 노동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제조업의 몰락은 불가피할것이라고 경고했다.
닐슨은 ‘노동의 힘’을 믿는 사나이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숲에서 나무로 무엇인가 만들기를 즐겼던 그는 한국에 부임할 때 미국에서 자신의 연장통을 챙겨왔다. 지난 6년 동안 개근했던 ‘사랑의 집짓기’ 현장에서도 최고급 목수라는 찬사를 들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학원에 다닌다는 겁니다. 노동을 모르고, 모험을 모르는 아이들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클 수 있을까요?”
글 한겨례신문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