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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메이데이)의 유래

게시일
2006-04-17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독점기업의 성장으로 노동문제는 더욱 날카롭게 현실의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민중의 피땀을 거름으로 자란 독점 자본은 국가권력과의 결탁으로 세계사를 제국주의, 파시즘으로 이끌고 가며 민중의 삶을 더욱 가혹하게 쥐어 짰다.

19세기 후반 미국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운동 또한 발전했다. 1869년 펜실바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결성된 노동기사단이 그 처음이었다. 노동기사단의 뒤를 이어 미국 노동총연맹이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1884년 제 4회 대회에서 1886년 5월 1일부터 1일 8시간 노동을 법률로 정하게 하도록 노력한다고 결의하였다.

드디어 1886년 5월 1일, 시카고를 중심으로 하여 미국의 각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 시위가 일제히 일어났다. 시위가 고조되는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가 사망하게 되자, 항의 집회가 헤이 마케트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집회가 해산되기 직전에 누군가가 회의장에 폭탄을 던졌고, 이로 인해 경찰과 시위 군중이 심하게 충돌하여 쌍방 간에 사상자가 생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시위 주동자 8명이 폭탄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이들에 대한 재판 결과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뒷날 세상 사람들은 헤이 마케트 사건이 노동운동 탄압을 위해 자본가들이 날조한 사건이었음을 알게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으로 미국 노동운동의 힘찬 발걸음이 영원히 멎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파업지도자인 엘버트 파슨즈가 형장에서 숨을 거두며 남긴 "민중의 소리를 들으라" 는 말 속에도 암시되어 있듯이 잠시 바닥으로 가라앉은 노동자들이 함성은 힘찬 분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1889년 7월 14일,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2 인터내셔널 창립대회가 파리에서 열렸다. 미국 노동상황을 보고 받은 파리회의는, 미국 노동상황을 기념해 5월 1일을 만국 노동자들의 단결의 날로 정하고, 8시간 노동제를 목표로 하여 1890년 5월 1일, 일제히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것이 국제적인 메이데이의 발단이다. 그 후 메이데이는 역사의 흐름에 발맞추어 때로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도 노동해방운동의 상징으로 정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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