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 철도기행 참가기
- 게시일
- 2005-01-10
도라산역에서 통일의 여명을 맞다
|통일염원 해맞이 철도여행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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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채 KT노조 조합원
언제부턴가 해넘이와 해맞이가 풍속으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사람이 즐거운 고민을 한다. 우리집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무등산, 여수 항일암 등을 다녀왔는데, 짜증나는 교통체증과 추위, 그리고 정작 봐야할 해를 보지 못했던 실망감 탓에 올해부터는 그냥 집에서 쉬면서 텔레비전이나 볼 요량이었다. 그러던 터에 민주노총 지역본부에서 `통일염원 해맞이 철도기행` 참가 권유를 받았다. 기차여행에 깃든 아련한 추억과 동경은 누구나 기대하는 것이기에 대환영하는 가족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2004년 마지막 날 회사 종무식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호남선 송정리역으로 가는 길에 우리 딸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모두가 들떠 있는 것 같다. 역 대합실에 도착해보니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통일선봉대`로 같이 활동했던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와 뜨거운 악수와 함께 안부인사를 주고받으며 열차에 올라탔다.
목포에서 일찍 출발한 낯익은 동지들과 다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지역본부에서 나눠준 도시락으로 2004년 마지막 식사를 가족과 함께 열차 안에서 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훌륭한 추억거리였다.
차내 노동자방송으로 퀴즈도 풀고, 국회에서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는 `국보법 폐지` 속보를 들으며 투쟁하는 대목에선 박수도 치며 목청껏 노래도 불렀다. 2004년이 한 시간여 남은 10시50분쯤 열차는 어느덧 용산역에 도착했다.
몇 분 뒤 부산에서 경부선을 타고 올라온 영남권 동지들까지 합류하니 용산역은 인파로 가득 찼다. 남쪽에선 느껴보지 못한 추위가 파고들었다. 작은 땅덩이인데도 지역마다 온도차가 심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역 앞에 마련한 무대의 객석(계단)에 앉아 `2004년 10대 뉴스`, `박 터뜨리기`, `2005년 희망뉴스` 등을 보고, 노래패와 어우러져 함성, 박수, 구호를 외치니 어느덧 2005년으로 넘어 와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옆 동지들에게 새해인사도 건넸다. 도라산역을 향해 떠나기 전까지 잠을 청했지만 몸만 뒤척일 뿐 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참을 쉬고 난 새벽 4시40분쯤 열차는 도라산역을 향해 기적을 울렸다.
많은 이가 잠에 빠져 있는 가운데 "민통선 안에 들어선다"는 차내 아나운서의 안내방송이 끝나자 희뿌연 아침을 맞는 철책 드리워진 임진강이 차장으로 두 눈에 들어온다. 헌병들이 차에 올라 숫자를 파악하는 순간, 아! 분단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조금은 긴장된 가운데 딸에게 머쓱하기도 했지만 우리 분단조국을 이야기하며 `통일염원`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딸은 얼마나 깊이 알아듣는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목적지인 도라산역에 다달았다.
도라산역! 분단의 상징, 끊어진 철길을 잇는데 뭐가 그리 어려울까. 앞다퉈 열차에서 내렸는데 너무나 추워 역사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다들 역사 앞에 모여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불면서 통일뱃노래, 통일비나리, 소원지묶기, 단심줄꼬기 행사에 참여했다. 같이 할 수 있는 동지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뜻깊고 뿌듯했다. 소원지에 `자주통일` `국보법 완전철폐`를 크게 써 걸면서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었다. 가족들과 손을 잡고 도라산역 낮은 앞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새해를 맞았다. 이날 여행에 깃든 그 숭고한 뜻을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깊이 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