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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걸레질 하는 소리....... 여 : 아! 발 좀 치워봐. 지금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방걸레질을 하는 그녀 아내...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 역시 아내라고 대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 :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남 :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여 : 어, 먹고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집안 청소 다 했더니 힘들어 죽겠어. 남 : 나 점심 약속 있어. 여 :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남 : .... 있었어. 깜박하고 말 안한거야. 중식이... 중식이 만나기로 했잖아. 여 : ...그래? 할 수 없지 뭐.해외출장 가있는 친구 중식이를 팔아놓고중식이한테도 아내에게도약간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한가로운 일요일난 아내와 집에 서 이렇게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가려는데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서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펑퍼짐한 바지에 한쪽 다리를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폼새다. 여 : (우물거리며) 언제 들어 올거야? 남 : 몰라... 저녁도 먹고 들어올지... 여 : 나 혼자 심심하잖아. 빨리 들어와. 남 : 애들한테 전화해 보든가.... 여 : (물 한잔 마시고) 애들 뭐...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기나 해? 엄마 나 바쁘니까 끊어. 이 소리 하기 바쁘지. 남 : 친구들 만나든가 그럼! 여 : 내가 일요일 날 만날 친구가 어딨어? * 밥 긁어서 먹는 소리.......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 게아내의 해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여 : (아픈 듯) 어디 갔다 이제 와? 남 :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여 :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혔나봐.약 좀 사오라고 그렇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남 :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여 : 손이라도 좀 따줘. 남 :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라니...좀 천천히 못 먹냐? 여 :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서 손끝을 바늘로 땄다.아내의 어깨가 어느새 많이 말라 있었다. 다음날, 회식이 있어,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런데 아내가 또 소파에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다. 남 : 여보... 들어가서 자. 여 : 여보... 나 배가 또 안 좋으네. 남 :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나? 여 : 그런가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남 : 손 이리 내봐.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남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여 : 어. 너무 답답해서... 남 : (버럭)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여느 때 같으면마누라한테 미련 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아내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 응급실 소음소리....... 여 : (속삭) 여보. 병원 오니까, 괜찮은 거 있지. 남 : 가만 있어봐. 검사 받아야 되니까. 여 : 아니...진짜 말짱해.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봐. 남 :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여 : 뭐하러 그래~ 응급실 얼마나 비싼데~내일 병원 문 열면 가서 검사 받을게. 남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 : 가자니까. 완전 바가지야. 잡을 틈도 없이, 아내는 먼저 일어나 나간다.나도 머쓱하게 아내를 따라 나온다.하긴 아내의 말처럼 응급실은보통 진료비보다 훨씬 비싸다. * 거리 소음 + 걷는 소리....... 남 : 진짜 괜찮아? 여 : 응. 나 학교 다닐 때도시험 보기 전날이면배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병원만 딱 오면배가 안 아픈 거야.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봐. 남 :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가고 그래. 여 : 어머~ 당신 놀랬어?어유~ 그래도 홀아비 되긴 싫었나봐? 남 : 싫긴 뭐가 싫으냐?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여 :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걷는 소리....... 참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함께 길을 걸어본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여 :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남 : 바쁜데... 여 : 회사 앞까지 왔는데? 남 :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여 : 어. 신경성 위염이래.남편이 속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남 :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뭐 먹고 싶어? 여 :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 죽 떠먹는 소리....... 남 : 여기 괜찮지? 여 : 횟집에서 죽도 파네? 남 : 어.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여 :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 바닥까지 긁어먹는 소리.......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만 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난 몇 십만 원짜리 술도아무렇지 않게 먹는데...내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여 : 여보, 할 말이 있는데. 남 : 어, 얘기해. 여 :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 될까? 남 :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여 : 그러게. 3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남 :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여 : 당신 집은 오남매야.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데....... 남 :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여 :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남 :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여 :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난 우리 집 갈 거야. 남 :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여 : 안계시면 어떡 할 건데?나도 할 만큼 했어.맘대로 하라 그래. 남 :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여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오히려 마누라 편든다며,내게도 잔소리를 늘어놓셨 다.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언니 흉을 보면서,무슨 며느리가 그렇 게 제멋대로냐고 했다.자기는 임신을 핑계로,추석 전부터 우리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제 새언니가 친정에 간 건,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 다 행동마다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 문 탕 열고 들어오는 + 클래식 소리....... 집으로 돌아오자,아내가 태연히 앉아서,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남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 음악 탁 끄는(쇼팽의 이별곡) 소리....... 여 :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왜? 남 :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해? 여 :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남 : 뭐?? 여 :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생각했었어.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남 :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여 :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확신이 있었기 때문에,죽음을 택했을 거야. 남 : 그게 말이 돼? 여 : 내가 지금 없어져도,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 을 거야.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금방 잊을 거야! 남 : ..... 여보?!..... 여 : (울며)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 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침대에 혼자 누워 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혼자 상상 했었어.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끝내 나 혼자 두더라.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다음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남 : 죽으러 가냐? 여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 :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여 : 그래. 누가 뭐래. 남 : 악성도 다 고친다구. 내 친구 차교수 알지?그 친구도 위암3기였 는데, 멀쩡하잖아.요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거!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구!!!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아내를 안 심시키기 위한 건지,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큰 소리 치 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그러면서도 난 끝까 지 중얼거렸다. 남 : 암? 쳇!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아무 것도...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 고 있는 건가,내 아내가 위암이라고?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 를 하시라고....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나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3년을 살지,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멱살이라도 잡고,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여 : ...... 여보!!...... 아내의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 앉는다.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 다.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보여주게 될 것이 다. 그러긴 싫었다. 여 : 여보.... 남 : (무뚝뚝) 왜! 여 : ...........미안해. 남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내가 아까 말했지?차교수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차교수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다니잖아.그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더 튼튼해!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저거... 다 뻥이야! 사람 겁주고...어?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보여주고 싶어서 큰 소리 치고 있다.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아내의 따뜻한 손 이 내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 엘리베이터 띵 올라가는 소리....... 집까지 오는 동안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누구 부인이 죽었다..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 가 됐지만,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 고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문을 열었을 때, 펑퍼 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술 좀 그만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처음으로 우 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 여보, 우리 이사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여 :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남 : 됐어. 난 여기가 좋아. 여 :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새집으로 이사 가면 좋잖아. 남 : 됐다고 하잖아. 여 :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갑자기 들이닥친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아내는 살갑지도 않은아이들의 손을 잡고,공부에 관해,건강에 관해,백번 도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대도,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담배 불 켜는 소리....... 여 : 또... 또 담배.... 남 : 또...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여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남 : 코스모스? 여 : 그냥... 그러고 싶네.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꽃이 피어 있는 길을나와 함께 걷고. 여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남 : 아니야. 가자. * 바람부는 + 갈대숲 일렁이는 소리.......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 : 뭔데? 여 :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남 : 뭐? 여 : 내년 4월에 탈 거야.2천만원 짜린데,3년 부은 거야.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남 : 당신 정말... 여 :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올해 적금 타면,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엄마 이가 안좋으신데,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소리내어... 엉엉.....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어떻게 살아갈까....* 문 여는 소리.......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난 깜짝 놀랐다.집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이,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오도카니 남아 있었다.남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 :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남 : 뭐? 여 :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남 : 당신 정말 왜 이래!!그럴 거면, 당신이랑 같이 가. 여 : 아니야. 난 새집 안들어 갈래.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남 :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여 :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베란다 사이 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 풀벌레 소리.......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남 : 내가 뭐라 그랬는데.... 여 :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남 : 그랬나.. 여 : 그 전에도 그 후로도,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그거 알지? 남 : 그랬나... 여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남 : ..... 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아침햇살 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남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여 : ................. 남 : 여보. 장모님 틀니...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오늘 가서 해드리자. 여 :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남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텐데....여보, 안 일어나면, 안간다!여보?!..... 여보!?...... 이제 아내는 웃지도,기뻐하지도,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사랑한다고.... 어젯밤....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아!!!! 그렇게, 난, 아내를 보내 버렸다. 댓글 0 댓글 등록 폼 등록 작성자 제목 게시일 서부지방본부 사랑의 농촌 일손돕기 행사[한국노총인천지역본부] 게시일2024-07-01 서부지방본부 2024년 단체교섭 의견수렴 게시일2024-06-26 서부지방본부 2024년 단체교섭 의견수렴 게시일2024-06-26 서부지방본부 [서부] 서부지방본부 현장활동 (인천빌딩, 숭의빌딩) 게시일2024-06-11 서부지방본부 [서부]서부지방본부 서부액세스센터 지부 게시일2024-06-10 서부지방본부 2024년5월17일 안양권 조합간부 수련회 게시일2024-05-20 서부지방본부 2024년5월17일 서인천권 조합간부 수련회 게시일2024-05-20 서부지방본부 2024년 5월10일 서부지방본부 부천권(부천.부평.계양)조합간부 수련회 게시일2024-05-13 서부지방본부 서부지방본부 권역회의 게시일2024-05-13 서부지방본부 [서부] 24년 1분기 노사협의회 개최 게시일2024-03-13 처음이전12345다음끝
* 방걸레질 하는 소리....... 여 : 아! 발 좀 치워봐. 지금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방걸레질을 하는 그녀 아내...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 역시 아내라고 대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 :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남 :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여 : 어, 먹고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집안 청소 다 했더니 힘들어 죽겠어. 남 : 나 점심 약속 있어. 여 :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남 : .... 있었어. 깜박하고 말 안한거야. 중식이... 중식이 만나기로 했잖아. 여 : ...그래? 할 수 없지 뭐.해외출장 가있는 친구 중식이를 팔아놓고중식이한테도 아내에게도약간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한가로운 일요일난 아내와 집에 서 이렇게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가려는데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서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펑퍼짐한 바지에 한쪽 다리를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폼새다. 여 : (우물거리며) 언제 들어 올거야? 남 : 몰라... 저녁도 먹고 들어올지... 여 : 나 혼자 심심하잖아. 빨리 들어와. 남 : 애들한테 전화해 보든가.... 여 : (물 한잔 마시고) 애들 뭐...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기나 해? 엄마 나 바쁘니까 끊어. 이 소리 하기 바쁘지. 남 : 친구들 만나든가 그럼! 여 : 내가 일요일 날 만날 친구가 어딨어? * 밥 긁어서 먹는 소리.......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 게아내의 해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여 : (아픈 듯) 어디 갔다 이제 와? 남 :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여 :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혔나봐.약 좀 사오라고 그렇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남 :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여 : 손이라도 좀 따줘. 남 :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라니...좀 천천히 못 먹냐? 여 :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서 손끝을 바늘로 땄다.아내의 어깨가 어느새 많이 말라 있었다. 다음날, 회식이 있어,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런데 아내가 또 소파에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다. 남 : 여보... 들어가서 자. 여 : 여보... 나 배가 또 안 좋으네. 남 :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나? 여 : 그런가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남 : 손 이리 내봐.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남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여 : 어. 너무 답답해서... 남 : (버럭)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여느 때 같으면마누라한테 미련 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아내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 응급실 소음소리....... 여 : (속삭) 여보. 병원 오니까, 괜찮은 거 있지. 남 : 가만 있어봐. 검사 받아야 되니까. 여 : 아니...진짜 말짱해.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봐. 남 :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여 : 뭐하러 그래~ 응급실 얼마나 비싼데~내일 병원 문 열면 가서 검사 받을게. 남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 : 가자니까. 완전 바가지야. 잡을 틈도 없이, 아내는 먼저 일어나 나간다.나도 머쓱하게 아내를 따라 나온다.하긴 아내의 말처럼 응급실은보통 진료비보다 훨씬 비싸다. * 거리 소음 + 걷는 소리....... 남 : 진짜 괜찮아? 여 : 응. 나 학교 다닐 때도시험 보기 전날이면배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병원만 딱 오면배가 안 아픈 거야.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봐. 남 :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가고 그래. 여 : 어머~ 당신 놀랬어?어유~ 그래도 홀아비 되긴 싫었나봐? 남 : 싫긴 뭐가 싫으냐?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여 :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걷는 소리....... 참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함께 길을 걸어본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여 :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남 : 바쁜데... 여 : 회사 앞까지 왔는데? 남 :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여 : 어. 신경성 위염이래.남편이 속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남 :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뭐 먹고 싶어? 여 :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 죽 떠먹는 소리....... 남 : 여기 괜찮지? 여 : 횟집에서 죽도 파네? 남 : 어.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여 :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 바닥까지 긁어먹는 소리.......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만 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난 몇 십만 원짜리 술도아무렇지 않게 먹는데...내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여 : 여보, 할 말이 있는데. 남 : 어, 얘기해. 여 :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 될까? 남 :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여 : 그러게. 3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남 :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여 : 당신 집은 오남매야.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데....... 남 :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여 :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남 :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여 :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난 우리 집 갈 거야. 남 :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여 : 안계시면 어떡 할 건데?나도 할 만큼 했어.맘대로 하라 그래. 남 :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여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오히려 마누라 편든다며,내게도 잔소리를 늘어놓셨 다.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언니 흉을 보면서,무슨 며느리가 그렇 게 제멋대로냐고 했다.자기는 임신을 핑계로,추석 전부터 우리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제 새언니가 친정에 간 건,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 다 행동마다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 문 탕 열고 들어오는 + 클래식 소리....... 집으로 돌아오자,아내가 태연히 앉아서,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남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 음악 탁 끄는(쇼팽의 이별곡) 소리....... 여 :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왜? 남 :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해? 여 :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남 : 뭐?? 여 :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생각했었어.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남 :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여 :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확신이 있었기 때문에,죽음을 택했을 거야. 남 : 그게 말이 돼? 여 : 내가 지금 없어져도,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 을 거야.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금방 잊을 거야! 남 : ..... 여보?!..... 여 : (울며)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 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침대에 혼자 누워 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혼자 상상 했었어.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끝내 나 혼자 두더라.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다음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남 : 죽으러 가냐? 여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 :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여 : 그래. 누가 뭐래. 남 : 악성도 다 고친다구. 내 친구 차교수 알지?그 친구도 위암3기였 는데, 멀쩡하잖아.요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거!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구!!!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아내를 안 심시키기 위한 건지,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큰 소리 치 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그러면서도 난 끝까 지 중얼거렸다. 남 : 암? 쳇!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아무 것도...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 고 있는 건가,내 아내가 위암이라고?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 를 하시라고....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나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3년을 살지,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멱살이라도 잡고,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여 : ...... 여보!!...... 아내의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 앉는다.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 다.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보여주게 될 것이 다. 그러긴 싫었다. 여 : 여보.... 남 : (무뚝뚝) 왜! 여 : ...........미안해. 남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내가 아까 말했지?차교수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차교수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다니잖아.그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더 튼튼해!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저거... 다 뻥이야! 사람 겁주고...어?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보여주고 싶어서 큰 소리 치고 있다.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아내의 따뜻한 손 이 내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 엘리베이터 띵 올라가는 소리....... 집까지 오는 동안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누구 부인이 죽었다..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 가 됐지만,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 고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문을 열었을 때, 펑퍼 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술 좀 그만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처음으로 우 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 여보, 우리 이사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여 :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남 : 됐어. 난 여기가 좋아. 여 :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새집으로 이사 가면 좋잖아. 남 : 됐다고 하잖아. 여 :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갑자기 들이닥친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아내는 살갑지도 않은아이들의 손을 잡고,공부에 관해,건강에 관해,백번 도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대도,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담배 불 켜는 소리....... 여 : 또... 또 담배.... 남 : 또...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여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남 : 코스모스? 여 : 그냥... 그러고 싶네.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꽃이 피어 있는 길을나와 함께 걷고. 여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남 : 아니야. 가자. * 바람부는 + 갈대숲 일렁이는 소리.......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 : 뭔데? 여 :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남 : 뭐? 여 : 내년 4월에 탈 거야.2천만원 짜린데,3년 부은 거야.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남 : 당신 정말... 여 :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올해 적금 타면,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엄마 이가 안좋으신데,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소리내어... 엉엉.....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어떻게 살아갈까....* 문 여는 소리.......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난 깜짝 놀랐다.집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이,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오도카니 남아 있었다.남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 :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남 : 뭐? 여 :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남 : 당신 정말 왜 이래!!그럴 거면, 당신이랑 같이 가. 여 : 아니야. 난 새집 안들어 갈래.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남 :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여 :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베란다 사이 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 풀벌레 소리.......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남 : 내가 뭐라 그랬는데.... 여 :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남 : 그랬나.. 여 : 그 전에도 그 후로도,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그거 알지? 남 : 그랬나... 여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남 : ..... 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아침햇살 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남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여 : ................. 남 : 여보. 장모님 틀니...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오늘 가서 해드리자. 여 :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남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텐데....여보, 안 일어나면, 안간다!여보?!..... 여보!?...... 이제 아내는 웃지도,기뻐하지도,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사랑한다고.... 어젯밤....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아!!!! 그렇게, 난, 아내를 보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