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논의결과......
- 게시일
- 2003-05-29
주5일 근무제 논의결과와 입법전망
김 훈 식(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법정기준근로시간은 1989년 근로기준법개정을 통해 주당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되었다. 그 후 근로자들의 실근로시간은 다소 축소되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장시간근로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 현재 연간 실근로시간이 2,474시간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1,877시간, 일본의 1,821시간, 영국의 1,708시간, 독일의 1,480시간과 비교하면 500 내지 1,000시간이 많은 것이다.
또 OECD가입 국가중 유일하게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국가이다. 이러한 장시간 근로는 빈번한 산업재해와 과로사,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 가중, 가족생활의 피폐화, 노동의 효율성저하 등 경제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1998년 2월 6일 노사정 대타협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조치 등 90개 합의사항가운데 하나로 근로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안정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극심한 불황과 구조조정속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은 상당기간 가시화되지 않았다. 1999년에 이르러 경기가 회복되고 실업율이 떨어지면서 노동계는 근로자의 삶의질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장시간근로 개선문제를 적극 제기하였다.
노사정위원회는 이같은 노동계의 주장을 수용하여 2000년 5월 17일 본회의에서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 설치를 결의하고 의제범위를 `근로시간단축문제, 관련 임금 및 휴일·휴가`로 한다는데 합의하였는데 이로써 본격적인 근로시간단축방안 논의가 시작되었다. 1999년 10월에 `노동시간단축특별법`제정을 국회에 청원했던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상태여서 특위구성에 참여하지 못했다.
근로시간단축 특위 설치에 합의한 경영계는 근로시간단축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던 그간의 입장을 바꾸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휴일·휴가등의 개정과 함께 법정근로시간단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경영계는 초과근로할증율 25%로 인하, 단축시간만큼 임금삭감, 유급주휴일의 무급화, 월차휴가제도 폐지와 연차휴가 20일 상한선 설정, 유급생리휴가제도 폐지,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1년단위로 확대, 단계적 실시등을 법정 주40시간제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였다.
논의경과
근로시간단축 논의는 2000년 5월부터 정부가 근로시간단축관련 근로기준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2002년 10월까지, 2년 6개월간 전개되었다. 근로시간단축 논의는 노사당사자가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의 변화속에서 각각의 입장을 관철하고 구성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전술을 구사함으로써 어렵고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논의과정은 다음 세 단계로 나누어 고찰해 볼 수 있다.
우선 1단계로 근로시간단축특위 노사정공익 위원들은 사업장방문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장시간근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근로시간단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외국의 근로시간제도에 대한 조사연구, 우리제도와의 비교 고찰을 통하여 근로시간단축의 기본원칙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2000년 10월 23일에 근로시간단축 관련 기본원칙합의에 도달하였다. 이 합의에서 노사정은 연간 실근로시간을 가능한 빠른 시일안에 2,000시간미만으로 줄이기 위해 업종과 규모를 감안하여 법정근로시간을 주당40시간으로 단축하고, 휴일·휴가제도를 국제기준에 걸맞게 개선하며 근로시간단축과정에서 근로자의 생활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는데 합의하였다.
이처럼 주40시간제 도입에 노사가 원칙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2단계 논의에서는 근로시간과 관련된 관련된 임금, 휴일· 휴가등 구체적인 쟁점들의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초과근로시간 상한선과 할증율, 연월차휴가일수, 임금보전과 단축일정 등 10여가지 쟁점에 관하여 노사의 입장과 의견이 대립하였다. 노동계가 근로자 삶의 질향상에 초점을 두고 근로조건의 저하없는 주40시간제 도입을 주장한 데 반해 경영계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휴일휴가정비와 노동비용증가의 억제에 중점을 두었다. 공익위원들은 구체적인 쟁점에 대한 접근에 있어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근로자의 삶의질향상과 기업경쟁력의 조화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노사양측의 입장을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노사대표 모두가 조직내부의 반발에 따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합의에 도달하기는 곤란하였다. 이에 공익위원들이 2001년 9월에 공익위원안을 제시하여 노사합의를 유도하고자 하였다.
3단계에서는 노사정간 합의타결을 위한 본격적인 실무, 고위협상이 전개되었다. 2001년 10월 본회의에서는 노사간 대화진전이 더 이상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고, 근로시간단특위 논의와 별도의 노사정 고위급인사가 참여하는 비공식 협상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이같은 결정에 따라 노사정간에 고위급, 실무자급의 대화와 협상이 입체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쟁점에 대해서 노사간 의견접근이 이루어져 2001년 12월 12일에는 `근로시간단축관련 합의대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합의대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노동계 내부의 반발이 일어나고 이로 인하여 협상이 한동안 중단되었다.
2002년에 들어서는 2월중순부터 노사정간 실무, 고위급 협상이 활발해졌다. 차관급 및 실무자급 협상이 전개되는 가운데 장관급회의에서도 합의방안을 모색하였다. 4월 25일에는 노총 사무총장, 경총 부회장이 참여한 협상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하여 절충을 시도하였지만, 끝내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지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7월 22일 본회의에 그간 논의결과를 상정하고 막판 대타협을 시도하였다. 노사대표들이 대부분의 사항의 개선방안에 공감하여 합의도출이 가능할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연차휴가가산기준, 임금보전방안 이 두가지 사안에 대하여 노사대표가 끝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노동계가 연차휴가에 대해 2년당 1일 가산하는 방식을 요구한 데 반해 경영계는 3년당 1일 가산을 주장하였고, 임금보전에 있어서는 노동계가 근로시간단축분임금, 생리휴가 무급화 및 연월차휴가축소에 따른 임금보전등으로 구체적인 명문화를 요구하였지만 경영계는 기존 임금수준보전이라는 원칙적 규정만 두고 구체적인 내용은 노사간 자율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결렬되고 말았다. 이날 노동부는 두가지 사안에 대한 중재안을 제시하고 노사의 입장을 절충하고자 하였으나 경영계가 반대함으로써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논의결과
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시간단축합의가 실패로 끝나고 그간 논의결과는 정부에 이송되었다. 이에 노동부는 이미 노사간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은 물론 합의결렬 요인이었던 두가지 쟁점사안에 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입법절차에 착수하였다. 입법예고과정을 거친 후 `02년 10월에 규제개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규개위의 심의과정에서 지적된 시행시기를 다소 조정한 후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으로 확정하여 10월 17일 국회에 제출하였다. 국회는 11월 5일 환경노동위원회 심의안건으로 상정하고 노사당사자를 불러 한차례 공청회를 개최하는데 그치고 본격적인 심의를 하지 못한 채 계류시키는 것으로 결정하고 마감하였다.
정부가 마련하여 국회에 제출한 근로시간단축관련 근로기준법개정안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3개월 단위로 확대하고 1일 12시간 주당 52시간한도를 설정하였고, 선택적 보상휴가제도는 노사합의로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유급주휴일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생리휴가는 무급화하였으며, 초과근로 상한선을 3년간 한시적으로 주당 16시간으로 하고 할증률을 3년간 한시적으로 최초 4시간에 대하여 25%로 규정하였다. 근로자의 휴가에 대해서는 월차휴가를 폐지하되 연차휴가를 1년근속시 15일을 부여하고 이후 2년당 1일 추가되도록 하였으며 1년 미만 근속자는 1월당 1일의 휴가를 부여하도록 하고 휴가사용촉진방안을 제도화하였다. 주40시간제 시행시기는 금융보험업, 공공부문, 1000인이상 기업은 2003년 7월, 300인이상은 2004년 7월, 100인이상은 2005년 7월, 50인이상은 2006년 7월, 20인이상은 2007년 7월, 20인미만은 2010년을 기한으로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것으로 하였다. 임금보전의 경우는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급통상임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는 포괄적인 임금보전을 부칙에 명시하였으며, 아울러 부칙에 기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의 갱신노력의무를 규정하였다. 노사자율적으로 주40시간제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개정법이 적용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정부는 근로시간단축이 중소영세기업에 무리없이 정착될 수 있도록 세제, 금융지원조치와 함께 생산성향상지원대책을 발표하였다.
입법 전망
이러한 정부안에 대하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제조부문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정부안이 `노동자들의 삶의질과 노동조건을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악안`이라면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안은 휴일휴가축소, 임금삭감, 노동조건악화를 초래하는 법안이라면서 특히 전면시행시기를 2010년으로 한 것은 중소영세기업 종사근로자와 비정규직근로자 등 소위 취약계층근로자들의 근로조건과 삶의 질을 악화시켜 사회적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용자측은 특히 중소기업에서 그렇지 않아도 생산인력부족으로 외국인력을 수입하고 있는 형편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경우 인력난이 가중되어 생산차질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수준에 도달할 때 중소기업에서 주40시간제가 시행되도록 전면시행시기를 2012년까지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지난해 대선공약에서 정부안 가운데 두 가지 사항을 보완하여 근로시간단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두 가지는 우선 단축일정을 앞당겨서 새정부 임기가 끝나는 2007년까지 전체기업에 주40시간제가 실시되도록 하고, 또 정부안에 1월당 1일 부여하도록 되어 있는 1년미만 근속자들의 휴가를 공익위원안처럼 연간 15일을 한도로 1월당 1.5일 부여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단축일정과 구체적 임금보전등 핵심사안에서 노사의 주장이 크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03. 4. 30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의 주선으로 민주노총이 참여한 가운데 노사정간 재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의 근로시간단축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의 참여가 큰 의미를 갖고 있지만, 다시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함으로써 노사정간 합의도출과 입법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