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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원 하나 보려고 한국 찾도록 만들겠다”

게시일
2016-06-14

[전국초대석]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생각하는 정원’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다. 황무지였던 이 곳은 내년 팔순을 앞둔 성범영(79) 원장이 50여년간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



중국인들이 성 원장을 고사성어인 ‘우공이산(愚公移山)’에 빗대어 ‘현대판 우공’이라 부르고, 중국 중학교 교과서에 그를 한국 민족정신 양성의 모범이라고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은 내년에 팔순을 앞두고 있지만 ‘세계 최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여전히 걸어가고 있었다.




20년간 맨땅에 돌ㆍ흙 옮겨 조성




해외 전문가들 “세계 최고” 극찬



지난 3일 생각하는 정원에서 만난 성 원장의 모습은 제주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촌로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쪽이 뜯어진 패랭이 모자를 쓰고 제주 전통복장인 갈옷(제주 토종 풋감으로 염색한 제주 전통 노동복)을 입은 채 공원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에게 정원 소개를 부탁하자 대뜸 “아직은 정원이 미완성”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이어 “지금의 정원은 머릿속에 구상중인 정원의 절반 정도”라며 “앞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정원 하나만을 보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도록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팔순 노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던 것은 이미 전 세계 정원ㆍ조경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정원을 두고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정원’ ‘세계 유일의 정원’이라는 극찬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정원에는 제주의 오름을 비롯해 수많은 나무와 돌들 하나하나 모두 성범영 원장의 손길을 거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은 생각하는 정원 전경.




시진핑 등 中 고위층 줄줄이 방문


中 교과서에 ‘현대판 우공’ 소개



공교롭게도 이 정원은 국내 보다 해외,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1995년 11월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의 방문이 계기가 됐다. 당시 예정된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정원을 둘러보고 귀국한 장 전 주석은 “한국 제주도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은 일개 농부가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가서 보고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국가 간부들에게 지시를 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 당과 정부, 지방정부, 군인 등이 한국을 찾았으면 꼭 한번은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됐다. 1998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국가 부주석, 시진핑 현 주석도 지난 2005년 저장성 서기 시절 방문하는 등 중국의 최고 권력자들이 이 정원을 찾으면서 중국 현지에서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성 원장은 중국 고위 공무원들과 문화예술계 인사, 정원을 찾았던 주한 외교사절을 비롯한 전 세계 유명인사들 등과 교류를 이어가며 민간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 보급된 중국 9학년(한국의 중학교 3학년)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 성 원장이 제주에서 땅을 개간하게 된 계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원을 개원하는 과정 등이 소개됐다. ‘성범영이라는 이름은 한국인의 개척적이고 진취적인, 강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ㆍ스스로 쉬지 않고 줄곧 힘쓴다)의 상징이 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교과서 내용처럼 생각하는 정원은 출발부터 험난했다. 경기도 용인 출신의 성 원장은 1968년 제주에 내려와 돌과 가시덤불 외에는 전기는 물론 수도조차 없었던 황무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앞서 그는 제주에 땅을 사기 위해 서울에서 남성 와이셔츠 사업에 뛰어들었고, 사업이 번창해 공장을 짓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항상 마음은 제주에 가 있었다.


성 원장은 “잘 나가던 사업도 뒷전으로 하고 제주에 내려왔더니 마을주민들은 저를 ‘두루외’(미친놈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어)라고 말했고, 서울 친구들도 정신병원에 가보자고 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생각하는 정원에는 제주의 오름을 비롯해 수많은 나무와 돌들 하나하나 모두 성범영 원장의 손길을 거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은 생각하는 정원 전경.




생각하는 정원에는 제주의 오름을 비롯해 수많은 나무와 돌들 하나하나 모두 성범영 원장의 손길을 거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은 생각하는 정원 전경.



하지만 그는 20여년간 15만톤의 돌과 흙을 운반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름(기생화산)을 정원 안에 옮겨왔고, 매서운 제주의 바람에 나무들이 상할까 봐 쇠망치로 돌을 하나하나 다듬어 기다란 돌담을 쌓았다. 그의 손길을 거친 정원은 1992년 분재예술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3년 뒤인 중국 장 전 주석이 다녀간 후 유명세를 타고 인기를 얻었지만 외환위기 한파로 관광객이 줄어 자금난을 겪다 1998년에 경매에 넘어가는 위기를 맞았다. 


정원이 남의 손에 넘어갔지만 성 원장은 돈 한푼 받지 않고 7년간 정원에 나와 자식같은 나무들을 정성껏 돌봤다. 결국 정원의 가치를 알아본 모 은행 간부의 결단으로 자금을 지원받은 성 원장은 다시 정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세태


주변에 더 많은 우공 생겨나길”



그는 2007년 개원 15주년을 맞아 분재예술원에서 생각하는 정원으로 개명했다. 3만6,000㎡ 부지에 마련된 7개의 소정원내 분재 작품들에는 설명문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눈으로만’ 보는 관람이 아닌 ‘생각하며’ 관람한다는 의미를 더욱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생각을 하면서 관람을 해야 이 정원의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성 원장의 배려인 셈이다.


성 원장은 “황무지 땅에서 돌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을 당시 미쳤고, 어리석다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지만, 현재 이렇게 멋진 정원이 탄생한 것을 보면 ‘우공’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이 든다”며 “인간의 모든 역사도 이렇게 시작되고 발전하는 것일 것이다.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시대에 더 많은 ‘우공’들이 우리 주변에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주=글ㆍ사진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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