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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들 청년] “흙 심은 데 흙 나고…” 공부머리부터 교육·취업까지 대물림

게시일
2016-01-27

ㆍ부모·자녀세대 ‘쌍봉형 빈곤’ 고착, 이유는



청년의 고통을 논할 때면 등장하는 개념이 있다. ‘세대론’이다. 세대론에서 부모세대는 청년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거나 착취·방조하는 이들로 종종 묘사된다. 그러나 중·장년층 역시 소득·재산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세대론만 갖고는 ‘세대 내부의 계급’을 볼 수 없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흙부모’는 피나는 노력을 해도 자녀를 저임금의 ‘흙수저 청년’으로 키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어려운 ‘쌍봉형 빈곤’ 현상도 늘고 있다. 반면 ‘금부모’의 자녀는 쉽게 ‘금수저 청년’이 되고 있다. 흙수저 청년들을 옥죄는 사회구조의 중심에는 대를 잇는 ‘계급’과 기회의 불평등이 있는 것이다.

평균소득 격차를 키로 나타낸다면…“175cm인 당신은 1227m 거인을 볼 수 없다”한국에서 돈 버는 모든 사람들이 1시간 동안 행진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 속 사람들의 키는 각자의 소득이다. 우리나라 평균 소득자의 키를 남성의 평균키에 가까운 175㎝로 잡았다. 행진이 시작되면 처음 나오는 사람이 1년에 2313원을 버는 사람이다. 키는 0.01㎝에 불과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 뒤를 1.7㎝, 4.6㎝, 6.9㎝인 사람들이 따른다. 행진이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도 행진자의 키는 113.8㎝에 불과하다. 40분이 지난 후에야 평균키의 사람들이 나온다. 행렬이 끝나기 6분 전에는 3.87~6.34m에 달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득 상위 10%로 의사·변호사·금융인 등이다. 행렬이 끝나기 10초 전에는 대기업 최고위 간부나 유명 연예인 등 키가 20m에 육박하는 거인들이 등장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인의 키는 1227m다. 여의도 63빌딩(250m) 높이의 5배나 된다. 당신은 이 거인의 구두 굽이나 겨우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 펜이 <소득분포>(1971년)라는 책에서 시도한 ‘소득 행렬’을 한국에 적용한 것이다. 행렬의 토대가 된 자료는 국세청의 2014년 ‘통합소득 100분위’(과세 미달자 포함)다.
일러스트/ 김번 작가


■흙수저 대물림의 고통

이정훈씨(32·가명)의 아버지는 의류계통 사업가였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사업이 기울고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어느날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대출받아 가족의 생계를 잇다가 화장품 방문판매원을 거쳐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꽤 오래 그렇게 살다 정훈씨 가족에게 ‘계급 상승’의 기회가 왔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네 살 어린 동생이 기적적으로 미국 캔자스주립대에 붙은 것이다. 지역신문에 날 정도의 ‘사건’이었다. ‘유학파’ 동생이 훗날 ‘집안경제’를 일으키리라는 기대도 가져봤다.

 

“그러면 뭘해요. 집이 기울면서 다시 돌아왔는데….”

 

어머니의 수입이 줄면서 동생은 유학을 포기했다. 지금은 화장품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중이다. ‘흙수저’로 굴러떨어져 능력을 썩히고 있는 셈이다. 어차피 고정 수입이 없는 ‘흙수저 2대 가족’에게 해외 유학은 꿈같은 일이었다.

 

많은 청년들이 먼저 기대는 곳은 ‘부모 안전망’이다. 복지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꼴찌 수준인, ‘사회안전망 없는 한국’에서의 1차 생존법이다. 그런데 사적 복지·안전망의 역할을 떠맡은 부모(중·장년층)가 불안정한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 부모 빈곤은 자녀 세대로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다.

 

 

■부모와 자녀의 ‘동시 빈곤’

 

실제로 부모와 청년이 함께 어려운 ‘쌍봉형 빈곤’ 현상은 지속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학)는 2011년 소득분포 자료에서 ‘불안정한 계층’(정규직·고용주 제외)에 속하는 60대가 30대 자녀와 동시 빈곤을 겪고 있을 가능성을 계산해 봤다. 불안정한 60대의 30대 자녀가 빈곤층(소득 하위 40%)일 가능성은 21.41%였다. 반면 정규직·고용주 지위 등을 유지한 안정된 60대의 30대 자녀들이 빈곤층이 될 가능성은 8.87%였다. 마치 쌍봉낙타처럼, 부모와 청년 세대에 두 개의 ‘빈곤 봉우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부모 세대의 빈곤 위기는 IMF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면서 중산층이 급속히 무너진 것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신 교수가 30~50대 남성 1594명의 2001년 경제적 지위가 2011년에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한 결과 중산층을 유지한 30·40대는 3명 중 2명이었다. 50대의 경우엔 네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2011년 ‘정규직 중산층 분포’는 30대에 정점(38.79%)을 이루다가 50대(15.91%)에 급감한다. 신 교수는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불안정한 일자리에 더 노출돼 왔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공부머리’까지 계급에 좌우된다

 

“제가 어릴 때 똑똑했다고는 하는데 공부머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고교 졸업 이후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 채 꽃집, 빵집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김세영씨(33·가명)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언니와 함께 서울 중계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살아온 김씨는 앞날이 불투명한 이유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김씨의 경우처럼 부모의 빈곤이 자녀의 ‘지위획득 실패’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층계급이 구사하는 다양한 전략을 중산층과 하층 계급은 따라가기 힘들다는 데 주요 원인이 있다. 핵심고리는 교육과 스펙 경쟁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있는 부모의 ‘돌봄’은 자녀의 ‘공부머리’부터 바꾼다. 영국 런던정경대 레온 페인스타인 교수는 인지능력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2003년 밝혀냈다. 그는 1970년생 영국 아동 가운데 생후 22개월 때 인지능력이 상위 10% 수준이던 저소득층 자녀와 인지능력 하위 10%이지만 부모의 배경이 좋은 자녀를 비교했다. 그 결과 두 그룹의 인지능력은 생후 78개월(6년6개월) 즈음부터 역전됐다. 배경이 좋은 아동의 인지능력이 꾸준히 상승하고 저소득층 아동은 상대적으로 하락한 탓이다. 역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는 9~10세, 학교에 들어가 학업능력을 펼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고학력’의 어머니가 자녀 관리에 집중하는 것도 중·상층 계급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어머니가 고학력일 경우 자녀가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 직업을 얻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부모의 사회계층이 자녀의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효과’(중앙대 이병훈 교수·김종성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원)를 보면, 1999~2009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로 15~34세의 직업지위를 점수화했을 때 어머니 학력이 높은 사람의 점수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발견됐다. 실제로 김씨는 “어머니는 일하느라 바빠서 제 시험점수를 챙기거나 성적에 신경쓰라는 압박을 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향은 고졸 후 취업전선에 뛰어든 빈곤층 가정의 자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상류층의 특목중·고 카르텔

빈곤층이 생계에 집중하며 자녀에 신경쓰지 못하는 동안 명문 대학이 잣대로 작용하던 ‘계급’ 성취 도식은 더 복잡해졌다. 이제 이너써클은 특목중·고 네트워크다. 이기현씨(34·가명)는 강남에서 넉넉하게 자라 유명 외고를 거쳐 고려대를 졸업했다. 증권업계 종사자답게 ‘네트워크’ 감각이 발달한 이씨는 “이제 대학을 넘어 유명 외고 같은 특목고 네트워크가 중요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고교 후배니까 너 믿고 (금융상품을) 산다”는 말을 자주 듣고 스스로도 “고교 선배에게 달라붙어 산다”고 했다.

 

 




특목중·고 진학 역시 부모의 경제력과 맞물려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희삼 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특목고생 가운데 50.4%는 가족의 월 소득이 500만원을 넘었다. ‘200만원 이하’를 버는 가정은 15%에 불과했다.

 

반면 특성화고를 다닌 이들의 가정 중엔 200만원 이하를 버는 경우(57%)가 가장 많았고 500만원을 초과하는 가정의 비중은 4.8%에 불과했다.

 

‘유학’과 ‘해외체류’도 부모 경제력이 자녀의 ‘고급 스펙’으로 직접 연결되는 대표적인 경우다. 김은수씨(35·가명)는 중학생 시절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연간 학비가 2000만원에 달하는 국제학교를 6년간 다녔다. 김씨는 이때 영어실력을 쌓았고 각국의 친구를 사귀었다. 이 경험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 취업할 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나마 경제적 능력이 남아 있는 중산층의 경우 상류층의 계급유지 전략을 따라가는 데 힘 쏟기 바쁘다.

 

1976~1986년(2011년 기준) 출생자 2013명을 분석한 ‘스펙과 계급경쟁’이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간계급’에 속하는 경영·관리직, 전문직 종사자의 자녀가 일반 노동계급 자녀에 비해 외국어 능력을 쌓을 기회를 두 배 더 제공받았다.

 

즉 부모의 힘겨운 지원을 등에 업은 중산층 자녀들은 해외 유학 등 고급 스펙을 가진 상류층 자녀와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괜찮은 일자리’로 향하는 문은 작으면 작을수록 상류층은 다시 ‘변별력 있는 스펙쌓기’에 나설 것이다. 부모의 ‘지원수준’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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