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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어느새 55세… 은퇴후 뭐라도 하려면 평소 인간관계부터 챙겨라

게시일
2015-10-07

"퇴직한 후 재취업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분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 보세요."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시 흥덕IT밸리 건물 33층 삼성 전자계열 경력컨설팅센터. 퇴직을 3~6개월 앞둔 '예비 퇴직자'들은 강사가 나눠준 한 장짜리 A4 용지를 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종이에는 '친구' '동료' '협력업체·고객' '동창' '각종 모임·협회' 등의 항목이 있었지만 모두 합쳐 5명도 적지 못한 사람이 여러 명 나왔다. 자신의 현주소에 충격을 받은 참석자들의 한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한 참석자는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김석란 수석컨설턴트는 "퇴직 이후 제2의 인생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기반이 '인맥'"이라며 "인적 네트워크는 재취업에 결정적 역할을 끼칠 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 가정과 일의 균형, 여가·취미 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직장인에게 55세는 인생의 대전환점이다. 직장을 떠나든 남든 숱한 격변(激變)이 55세를 중심으로 앞뒤 몇 년 사이에 일어난다. 특히 직장인들의 '명목상' 퇴직이 이때 시작된다. 정년 제도가 있는 전국 20만여 개 사업장(2014년 기준) 중 99.1%가 55세 또는 그 이후를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55세=퇴직 시작'이라는 등식이 사람들 뇌리에 박힌 이유다.


내년부터 법적 정년은 60세가 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 1월부터, 2017년부터는 모든 사업장에 이 기준이 적용된다. 하지만 55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여전하다. 이 55세를 염두에 두고 준비한 사람과 대책 없이 세월을 보낸 사람이 누리는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사회의 55세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준비했느냐, 못 했느냐

중견기업에 다녔던 최모(61)씨는 지난 2009년 55세 정년이 되자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결혼 직후부터 "퇴직 후를 대비한다"며 차근차근 준비를 한 덕에 노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거의 없었다. 그는 요즘 국민연금·개인연금으로 매달 150만원을 받고, 아파트 2채에서 월세 380만원이 나온다. 취미와 봉사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1년에 두 번 해외 골프여행을 다닌다. 최씨는 "1995년 개인연금이 도입되자마자 가입했을 정도로 항상 퇴직 후를 생각했다"며 "그런 준비와 마음가짐이 지금의 큰 걱정 없는 삶을 만들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생 2막을 제대로 살려면 경제적 여유, 건강, 삶의 보람 등 3대 필수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얼마나 잘 대비했느냐에 따라 퇴직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벽이 될 수도, 행복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돈과 건강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2014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으로 건강문제(65.2%)와 경제적 어려움(53%)을 꼽았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금 40~50대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는 "늙어서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생계형이나 돈도 없고 삶의 의미도 느끼지 못하는 빈곤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의 '은퇴준비지수 2014'에 따르면 재무 영역 은퇴준비지수는 51.4점으로 모든 영역 중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전적 여유와 건강이 있어도 퇴직 때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지는 듯한 단절감·박탈감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온다. 지금의 50대는 오직 일만 하면서 직장이 전부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사막에 벌거벗겨진 채 혼자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만 55세인 김모씨는 "퇴직한 동창들을 보면 1~2년 사이에 팍삭 늙은 모습으로 나타나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직장을 떠나면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지 못한 게 큰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더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컨설팅 담당 임원은 "대기업에 다니는 게 천연 잔디 구장에서 하는 축구였다면 퇴직 후는 진흙탕이나 맨땅에서 공을 차는 것"이라며 "자존심 때문에 지인들에게 연락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조건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 관계를 회복시켜 강하게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인은 '장포대', 직장인은 '임포부'

"군대에 '장포대'가 있다면 회사원 세계엔 '임포부'가 있다."

국내 한 10대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50대 초반 김모 부장은 "꼭 임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고 했다. 예전처럼 정년이 55세였다면 임원 달고 2~3년 다니다 퇴직하는 코스를 꿈꿨겠지만 정년이 60세로 늘어나는 마당에 굳이 임원이 돼 남보다 먼저 회사를 떠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에서 장군 진급을 포기한 대령을 장포대라고 하던데 우리처럼 임원 진급을 포기한 부장은 임포부 아니냐"고 했다. 군에선 대령의 계급 정년(56세)이 보장돼 있다. 이 때문에 진급이 빨라 먼저 별을 달았다가 나중엔 동기인 대령보다 먼저 군을 떠나는 장성들이 생길 수 있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달라진 상황에 대처하는 50대 중반의 생존 전략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50대가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느끼는 현상 중 하나가 '후배 팀장'이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직장인들은 특히 이런 세상을 잘 견뎌야 한다. 사표 던져도 갈 데가 없고, 자녀들은 학교도 오래 다니고 취직도 잘 안 되니 돈 들어갈 데가 많기 때문이다.


에너지 관련 기업에 다니는 장모(51)씨는 얼마 전 직장 후배가 팀장이 된 부서에 배치됐다. '옛 선배들처럼 사표를 던질까'하는 갈등이 심했지만 몇 년 꾹 참기로 했다. 그는 "아직 대학 다니는 애들이 2명 있다"며 "주변에도 후배 밑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꽤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 오래 다니려면 윗사람은 물론, '아랫분들'의 따가운 시선도 이겨내야 한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회사에 나이 많은 고참 부장·과장들이 많아질 것이고, 승진과 급여 상승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는 후배들의 불만도 커질 것"이라며 "앞으로 이 문제 해결이 중요한 사회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집에서도 맘이 편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보통 은퇴 직후에는 아내·자녀들과 사이가 좋은데 이런 '퇴직 허니문'은 길어야 1년 정도다. 그 이후엔 구박과 홀대를 감내해야 한다. 퇴직 2년 차인 박모(57)씨는 "밖이나 집, 어딜 가도 다른 사람 눈치 봐야 하고, 맘 편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한 컨설팅 전문가는 "50대 중반 이후 퇴직자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산과 TV가 있는 거실, 커피 전문점 등이다"라고 말했다.

50대 중반이 되면 행동 양태도 달라진다. 제일기획은 최근 전국 10~50대 소비자 2000명을 상대로 '라이프 스타일'을 조사·분석했다. 여기에 나타난 만 55세 남성은 몇 가지 특징을 나타냈다. 우선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 책·강좌 등을 통해 재테크 공부를 한다'는 응답이 54.2%로 전체 남자보다 24.7%포인트 높았다. 알뜰 살림꾼의 면모도 보였다. '쇼핑 전에 목록을 작성한다'는 비율은 전체 남자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고, 반대로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원하는 제품을 꼭 산다' '갖고 싶은 물건은 가격에 관계없이 구매한다'는 항목에선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50대 중반 남성들이 젊었을 때처럼 과감하게 돈을 못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퇴직 준비 10년 플랜

정년이 60세로 연장돼도 퇴직은 결국 50대 중반에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도 기업들 대부분이 55세 이상을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퇴직은 그보다 빠르다. 경총 관계자는 "직장인들의 실제 퇴직 연령은 평균 53세 정도"라며 "정년이 60세로 연장돼도 실제 퇴직은 평균 55세 전후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회 변화와 직장 생활의 일정을 감안한 준비와 관리는 갈수록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마음 편한 은퇴를 위해 퇴직 10년 전부터는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장기적인 생애설계 개념은 일본에선 이미 1990년대에 시작됐지만, 국내에선 최근 2~3년 새 등장하고 있다.


10년이 중요한 이유는 재취업 등을 위해선 전문성이나 취미·적성 등을 찾아 개발해야 하고, 연금 등을 꼼꼼하게 분석해 필요한 노후 자금을 축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퇴직 준비를 10년·5년·1년 단위로 나눠 단계별로 체크할 사항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퇴직 준비는 절대로 1~2년 만에 뚝딱 이뤄질 수 없다"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 저자 맬컴 글래드웰이 성공한 사람은 10년 동안 1만시간을 투자했다고 주장하듯이, 퇴직을 위한 준비에도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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