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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든 깡통전세의 악몽…당신의 보증금이 위험하다

게시일
2015-06-23

◆ 경고등 켜진 전세버블 ◆



 

#1.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서 전세금 2억4000만원인 85㎡ 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40대 직장인 A씨는 올 초 전세 만기가 끝나 보증금을 찾아 이사를 가려다 큰 낭패를 봤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강제경매까지 했지만 유찰 끝에 결국 보증금 가운데 6000만원을 날렸다. 김씨는 아직도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2.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2012년 11월 서울 송파구 방이동 K아파트 전용면적 85㎡에 보증금 3억3000만원을 주고 전세를 들었다. 그는 지난해 말 층간소음 때문에 빌라로 이사를 가려 했지만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버텄다. 중개업소에 시세보다 3000만원이나 높여 내놓은 탓에 세입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사 당일까지 보증금을 못 받은 그는 빌라 전세를 놓치고 계약금 3000만원도 날렸다. B씨는 전세금 반환과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지만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전세금이 매매가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은 가운데 덩달아 세입자와 집주인 간 전세보증금 반환소송이 급증하면서 '전세 주의보'가 울리고 있다. 19일 대법원에 따르면 보증금 관련 소송(1심)은 2011년 5712건, 2012년 6478건, 2013년 7506건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전세금이 급등한 지난해엔 8000건을 넘어섰다. 2009년 이후 최대 수준인 셈이다. 올 들어 전세금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전세금을 둘러싼 분쟁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과거에도 전세보증금 관련 소송이 급증한 때가 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집값이 폭락하면서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것. 지금이 딱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집값이 받쳐줘 아직 대란까지 가진 않은 상황이지만 불씨가 남아 있다. 세입자가 모르는 사이에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근저당권이 설정됐거나 집주인 재정 사정이 나빠져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평생 모은 전세금을 잃고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셋집 부족이 심해지면서 집주인은 전세금을 더 올리는 추세여서 세입자가 전세에 몰리는 게 풀리지 않으면 '전세 버블'이 더 커져 터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입자 처지에선 만기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소송, 강제 경매, 압류라는 절차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집값과 비교해 전세보증금이 70%를 넘어서는 현실에서 경매 절차를 밟아 집을 강제로 매각한들 낙찰가율 등을 감안하면 보증금 전액 회수가 힘들 가능성이 크다. 정민경 명도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전세가율 70~80% 선에서 전세 계약을 했으면 보증금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며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사적 거래여서 집주인 신용도나 부채 상환 능력 등을 세입자가 알 길이 없는 만큼 전세 보증금이 100% 안전하다고 믿으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70.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도권·지방에 이어 서울에서도 전세금이 매매가를 따라잡은 단지가 처음 등장했다. 구로구 개봉동 두산 전용면적 59㎡는 지난달 2억2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지면서 매매가인 2억3000만원까지 올랐다. 집주인 재정 상태가 조금만 부실해지면 세입자에게 불똥이 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 상황은 전세금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격"이라며 "주택시장에 이상 신호가 오는 순간 깡통전세로 전락할 집들이 많아 변호사들 사이에선 1~2년 후 바빠지겠다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전세보증제도를 강화하거나 월세 시대에 맞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깡통전세와 전세금 부실 가능성이 커져 당장은 못 느끼지만 종국에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 비중을 높여 반전세로 계약하거나 전세보증제도를 활성화해야 분쟁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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