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열어보기] 바닥까지 내려간 금리
예금 이자에 의존해 오던 은퇴생활자들 깊은 한숨
재테크로 펀드·부동산 관심 늘어…주택대출 금리 더 내려갈 가능성
신규 대출은 미루는 게 유리, 고정·변동금리 격차는 커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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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 3,000만원을 한 시중은행의 연 2% 초반대 정기예금에 묻어둔 강진호(64)씨는 이달 말 만기를 앞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준금리가 추가로 내려감에 따라 계속 은행에 돈을 넣어둘 경우 사실상 손해를 보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강씨는 “이제는 금리가 오를 일만 남았다는데 섣불리 예금에 묻어뒀다가 낭패를 보는 게 아니냐”며 “돈을 어디에 굴려야할 지 고심된다”고 말했다.
서울 상암동에 사는 권상민(37)씨는 생애 첫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다 갈등에 빠졌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상된다는 말을 듣고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국내의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하됐기 때문이다. 권씨는 “당분간은 금리인하를 반영해 대출금리가 떨어질 것 같아 일단 대출을 미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11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50%로 석 달 만에 추가 인하함에 따라 투자자들의 재테크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낮아질 대로 낮아진 은행 예금 금리가 더 떨어질 게 분명해져 예ㆍ적금으로만 재테크를 해온 이들의 경우 더 이상 버텨내기 쉽지 않아졌다.
대출을 받았거나 신규 대출을 고민하는 이들은 고정금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은행들의 고정금리 대출 상품 금리가 상승하는 추세인 만큼 향후 금리 전망에 따른 셈법이 복잡해졌다. 채권이나 주식, 펀드 등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상대적인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상품이나 회복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심 역시 지속될 전망이다.
돈 어디에 맡겨야 하나
금리인하로 가장 타격을 받는 이들은 생활자금의 대부분을 이자소득에 의존해온 은퇴생활자 등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개인고객이 많이 가입하는 은행권 1년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전달보다 0.17%포인트 떨어진 1.84%로 사상 처음으로 1%대에 진입했다. 10억원을 은행에 예금하더라도 한 달에 이자가 15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세금 떼고, 물가상승률을 제하고 나면 실제로 손에 쥐는 건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예ㆍ적금 금리는 시차를 두고 더 내려갈 전망이다. 시중은행들의 일부 예금 상품 중에는 0%대 예금 상품이 출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좀 더 적극적인 자산운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영아 기업은행 수석 애널리스트는 “예금은 더 이상 재테크가 아니라 보관의 수단이라고 봐야 한다”먀 “저축과 투자의 비율을 1대2 정도로 잡고 자산 규모나 투자 경험 등을 따져 다양한 투자상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구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시차가 있긴 하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9월 첫 인상 테이프를 끊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는 걸 감안하면, 지금 1년 이상 장기로 새롭게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800조원을 돌파한 머니마켓펀드(MMF) 등 임시로 돈을 맡겨두는 단기 상품에 더 많은 돈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도 꺾지 못할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의 열기에도 기름을 부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금리 인하로 인한 대출 부담 완화로 청약시장에 몰리는 수요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은행에서 이탈한 자금이 고정적인 월세수입이 가능한 상가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으로 몰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출은 언제, 어떻게
반대로 은행 돈을 빌리거나 빌릴 예정인 사람들은 이번 금리 인하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욱 줄어들게 된다. 변동금리 대출의 경우 당장 금리하락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게 된다. 은행권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 대다수가 수신금리를 평균해 산출하는 코픽스(COFIX)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 5월 1.78%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부터 매월 사상 최저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신규 대출을 받는 경우 금리인하분이 반영될 때까지 대출을 미루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문제는 변동금리와 고정금리 사이의 선택이다. 금리가 지금보다 더 내려갈 가능성이 낮고 미국의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장기 고정금리형 대출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심이 되는 건 벌어질 대로 벌어진 변동금리와 고정금리의 격차다. 현재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변동금리는 최저 2.5~2.8% 수준인 데 비해 고정금리 상품은 3.1~3.4% 정도로 0.5%포인트 이상 격차가 벌어져 있다.
코픽스 하락으로 변동금리가 더 떨어질 경우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강남의 한 시중은행 PB센터장은 “기준금리가 바닥 수준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고정금리 상품의 경우 금리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며 “금리 인상이 예상되더라도 어느 정도 폭일지 등에 따라 어떤 상품을 선택할 지 등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