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美의 기준에 커지는 외모 콤플렉스… 앞다퉈 성형
“너도나도 예뻐지니 미인의 기준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최근 다이어트를 시작한 A(27·여)씨는 얼마 전 옷을 사러 갔다가 굴욕을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A씨는 “늘 입던 대로 66 사이즈를 달라고 했는데 매장에는 44나 55 사이즈만 있다고 하더라”며 “66 사이즈가 언제부터 희귀 사이즈가 됐느냐”고 헛웃음을 쳤다. 그는 “다들 마른 몸으로 변해가니 상대적으로 뚱뚱해진 것 같아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예뻐져도 행복하지 않은 여성들
3년 전 쌍커풀 수술을 한 B(25·여)씨는 지난달 말 재수술을 하고 회복 중이다. B씨는 “첫 수술을 한 뒤 눈밑 주름이 자꾸 쳐져 재수술을 하게 됐다”며 “눈 같은 경우는 2∼3번 재수술 받는 게 일반적이라 병원 상담 체크리스트에도 재수술인지 첫 수술인지 확인하는 항목이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성형수술 후 거울을 자주 보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결점을 더 많이 찾아내는 느낌”이라며 “요즘 길거리에는 예쁜 여자들이 많아 웬만큼 예뻐선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했다.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이 대중화된 요즘 미인보다 더 미인이 되기 위해 마른 수건을 짜내는 2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3일 한국갤럽이 지난 3월부터 3주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1%, 여성의 14%가 ‘성형수술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여성은 10명 중 3명(31%)이 성형수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용시술’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더 높아진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커 지면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사람들의 외모 콤플렉스는 더 커지고 있다. 미의 기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성형수술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C(27·여)씨는 “친구 4명을 만나면 그중 2명이 성형수술 경험자”라며 “친구들이 예뻐지는 걸 보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C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예쁜 외모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남들한테는 성형수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자기 전에 ‘성형수술 후기’들을 찾아보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남들 다 수술하는데 나도”
올여름 휴가기간에 눈·코 성형수술을 계획 중인 D(29·여)씨는 “여태까지 자존심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며 “길거리에 입체적인 얼굴이 많아지다보니 점점 내 얼굴이 밋밋해 보이더라”고 말했다. D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성형외과를 찾았는데 상담하는 의사도, 대기하는 환자들도 태연하게 앉아있어 오히려 그동안 내가 촌스러웠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E씨(28·여)는 올해 초 쌍커풀 수술과 코 필러 시술을 받았다. E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예뻐지고 싶은 욕심은 어쩔 수 없더라”며 “병원에서도 이 정도는 수술 축에 안 들어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성형외과가 지난해 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여성이 ‘외모에 만족해도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절반을 넘는 60.5%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성형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86.6%가 ‘하겠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외모 비교’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심리상담센터 김영미 상담사는 “자신의 외모에 만족함에도 불구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현상은 일종의 ‘상대적 외모지상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성형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들보다 나아야 한다는 현대사회의 경쟁심리가 외모에도 적용된 것이라며 “취업이나 승진에 외모가 중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형수술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형으로 외모경쟁을 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천박한 ‘외모지상주의’일 뿐”이라며 “외모보다 내면을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