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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치킨인생, 시킬것이냐 튀길것이냐

게시일
2014-07-11
 
[新대한민국 리포트] 2014 대한민국은 '치킨의 시대']

그 많던 멘토들, 힐링의 메시지들 그리고 '나를 경영하라'던 자기계발서들…. 이 모든 것들이 '사기'였던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곧이곧대로 믿었건만 실은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음만 확인했을 뿐.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도 웃지 않고, 편의점 알바도, 편의점 사장아저씨도 웃지 않는 시대. 웃음이 사라져 버린 시대.


 
2014년 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이다. 10대부터 직장인들까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치킨집'으로 수렴되는 현실을 치킨맵에 담아봤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 확실한 것은 치킨뿐인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들은 '어차피' 치킨이나 배달할 인생이라고, 어른들은 '결국에는' 치킨이나 튀길 인생이라고 확실히 자조하고 있으니까. 낳아도 품을 수 없고, 날개가 있어도 날 수 없는 비극적 치킨에다 말이다. 치킨에 빗댄 이런 자조들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다.





수능등급과 치킨의 상관관계
지난해 '어느 고3의 명언'이라는 제목으로 SNS을 달구었던 사진. 수능등급과 치킨의 상관관계를 촌철살인으로 표현했다. /사진=slr클럽

◇ 1~3등급은 시켜먹고, 7~9등급은 배달한다

서울 한 중학교 교실 책상 위에 쓰여진 낙서이다. 한 고등학생이 만들어 유행시킨 말이 중학생들에게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다. 기자들이 만난 서초구 한 고등학교의 김모(18)군은 "낙서가 아니라 현실이다"고 말했다. "공부 못하는 애들한테는 당연히 '치킨배달이나 할 XX'라고 말한다. 그럴만하지 않나? 이런 애들이 치킨배달이나 하지 뭘 하겠나? 배달하는 인생이 되는 거다."


더 이상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아무도 대들지 않는다. 커가면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는다. 한번 등급이 정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변화가능성에 대한 포기이다. 아이들 성장판에 콱 박혀버린 경쟁과 등급사회에 대한 유전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등급을 나누고, 대열에서 밀리면 본능적으로 포기해 버린다.


A고교 이모(40)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신 교무실로 개별적으로 찾아와 묻는다"면서 "한마디로 나만 알고 싶은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알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여고 이모(43) 교사는 "내신등급, 스마트폰, 옷 등 온갖 잣대로 서열화 한다"면서 "한 급 아래로 찍히면 스스로 '난 해도 안 돼'라고 포기해 버리고, 그런 아이들끼리만 어울린다"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3~19세 청소년 가운데 '(나의) 계층이동 가능성은 낮다'고 대답한 비율은 34.3%에 달했다.

대학전형에 따른 골품제

 
연세대 커뮤니티 '세연넷'에 올라왔던 내용. 전형에 따라 학생들을 서열화하고 있는 실태를 보여주고 있어 최근 논란이 일었다. 그림에는 이런 설명이 따라 붙어 있다. "연세대학교 입시 결과별 골품 비교한다. 성골=정세(정시합격생)·수세(수시합격생)·정재세(재수 정시합격생), 진골=정삼세(삼수 정시합격생)·정장세(장수 정시합격생)·수재세(재수 수시합격생), 6두품=교세(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학생)·송세(연세대 국제캠퍼스생)·특세(특별전형), 5두품=편세(편입생), 군세(군인전형), 농세(농어촌전형), 민세(민주화 유공자 자녀 특별전형)…."이런 설명이 따라붙습니다. /출처: 연세대 커뮤니티 '세연넷' 캡처

이런 10대가 20대가 되는 것이다. 오찬호 서강대 연구교수는 "예전에는 'SKY'라는 말은 있어도 '지잡대(지방 잡스러운 대학)'라는 말은 없었다. 잘 나가는 사람을 띄우기는 해도, 못 나가는 사람을 비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강대에는 가톨릭전형이라는 게 있는데, 일반전형 출신들은 '그거~거룩하지'라면서 4년을 조롱한다. 지방의 한 대도시에 가보니 이웃하고 있는 두 대학의 학생들이 똑같은 '알바'를 하는데도 입학성적이 높은 대학의 학생들이 더 높은 시급을 받더라. 더 받는 학생들도, 덜 받는 학생들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놀랐다. 강의시간에 사회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오글거린다'고 표현한다. 이상하게 쳐다본다. 사회현실, 세상물정 이야기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오히려 희망은 20대가 아니라, 30대에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주창윤 서울여대 교수는 "20대는 뼈저리게 등급주의를 내면화했다. 스펙경쟁 때문에 타인과의 건전한 관계를 배제하고 있다. 바뀔 수 있다는 희망도 상실한 것 같다. 지금 20대는 30대보다 더 보수적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나마 희망은 30대이다. 부모가 IMF사태를 겪고 자신들이 졸업할 무렵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는 등 처절한 경험을 했지만 20대보다 참여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치킨트리
자기계발서 열풍을 비판한 책 '거대한 사기극'으로 잘 알려진 이원석씨가 새책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한국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린 그림. 그 끝은 치킨집이 아니면 '아사'라는 것. /사진= '공부란 무엇인가' 168p

◇ 문과도 이과도 결국에는 다 '튀겨야 하는' 인생

30대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말도 어쩌면 무의미한지 모른다. 어차피 모든 세대가 '튀겨야할 인생'이라 자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회자된 문과, 이과생들의 '진로 트리'를 보시라. 그림 오른쪽을 보면 결국은 '치킨'이다. 졸업하고 바로 치킨집을 차리느냐(문과), 아니면 취업이라도 한번 해보고 차리느냐(이과) 경로만 다를 뿐 치킨집으로 다 수렴된다. 어차피 일자리 없고(문과), 있어도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에(이과) 다들 치킨집 인생이라는 것. 이 그림이 큰 호응을 얻자, 치킨집 창업에 관한한 문과가 이과보다 유리한 이유가 '빠른 창업으로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회자됐다.


위의 그림 또한 누가 사람들 웃으라고 그려본 것이 아니다. 현실이다. 서울 왕십리 H대 앞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47)씨는 이 대학 전자공학과 출신. 컴퓨터공학 석사까지 받았다. IT기업에서 근무하다 창업을 했지만 부도가 나는 바람에 8년전 치킨집을 열었다. 김씨는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다"고 말했다. "학교 동기들 중에 치킨집 하는 친구들 여럿 있다. 뭐 다 똑같다. 자의반타의반 다니던 회사 나오면 다른 회사로 옮기기 어렵다. 대학은 왜 나왔나 싶다. 어차피 치킨집 차릴 건데. 이게 30, 40대 아저씨들 현실이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웹툰의 배경인 한 대학교 졸업생이 자장면 배달부로 학생들 앞에 나타났다.

김씨의 말대로 치킨집은 이제 3040 가장들의 현실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7년간(작년말 기준) 서울에서만 2686곳의 치킨집이 문을 닫았지만, 동시에 3805곳이 문을 열었다. 제너시스BBQ는 가맹점주들을 대상으로 '치킨대학'을 운영중인데. 이 회사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실직하거나 명퇴한 40대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30대 가맹점주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안전도 보장 안 되는 현실, 낳아도 품지 못하고…

그래도 내 새끼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하루 종일 튀겨야 하는 인생도 버틸 수 있을 터. 알을 품고 낳아서 그 새끼와 나란히 거닐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허허벌판 양계장 밖으로 뛰쳐나온 닭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산산조각 났다. 같이 걷기는커녕 지켜줄 자신조차 없다.


 
미국의 한 농장에서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암탉. /사진= 동물자유연대

주부 박한승(36)씨는 그동안 생각만 했던 이민을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5살과 3살 된 아이들을 도무지 안전하게 키울 자신이 없다"며 "사촌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세탁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가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삼풍 붕괴 때 나는 17살이었고, 학교 친구 여러 명 희생됐다. 그 이후에도 씨랜드, 마우나리조트 등 나이별로 다 사고가 났다.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송파에 살고 있는데 제2롯데월드 공사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가" 이민알선업체인 드림이주공사에 따르면 북미, 북유럽 등으로의 이민 문의가 세월호 이후 2배나 늘었다.


설령 위험사회를 뚫고 성장해도 아이들의 미래는 불안으로 자욱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자식들의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해 '높다'고 응답한 사람은 30대가 36.8%, 40대가 39.3%에 불과했다. '본인들의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해 '높다'고 응답한 비율(30, 40대 모두 27.1%)과 비교해도 10% 정도 차이에 불과하다. 아이나 어른이나 미래는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이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임모(28)씨는 "결혼할 여자친구가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하는데 나도 동의한다"면서 "둘이서 맞벌이 하면 연봉 9000만원은 되지만 낳기만 하면 뭘하겠나? 교육비 생각하면 우리 미래가 없다. 애써 키워봤자 아이의 미래가 우리보다 나을 게 없지 않나. 괜히 죄짓지 말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피케티 열풍'도 이런 맥락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의 책 < 21세기 자본론 > 은 아직 번역도 안됐는데도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책의 요지는 '돈(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노동)이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빨라서 어떤 부모를 두었냐가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세습자본주의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 피케티 열풍에 대해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세습자본주의라는 말이 와 닿기 때문이다. 돈이 돈을 벌고, 유산을 많이 받은 사람에게 부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었던 것에 '정말 그렇다'고 정면으로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미쳐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자기계발서들을 한데 모아보았다.

◇"미쳐라" 모가지만 비트는 세상, 누가 새벽을 열 것인가

한때는 잘난 부모를 못 만났어도 '미치면' 될 것 같기도 했다. 자기계발과 멘토, 힐링의 논리였다. 천 번을 흔들리는 것은 날기 위한 잠시의 고통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한때의 눈가림뿐이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은 회의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나를 완성하라고?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미치라고? 열심히 하면 됐지 미치기까지 하라는 말인가'라고 말이다,


< 88만원세대 > 공저자인 박권일씨는 "책을 펴낸 이후 20대들로부터 '난 CEO가 될 사람인데 왜 노동자(88만원세대) 취급하느냐'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나도 열심히 하면 CEO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아를 '성형'하는 것, 바로 이것이 자기계발의 정점"이라며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자기계발과 멘토에 회의하기 시작했다"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자기계발 서적 판매권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1.1%나 하락했다. 시/에세이(24.2%) 다음으로 높은 하락률이다.

'미쳐도 안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순간 사람들은 그 모든 자조를 치킨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날개가 있어도 날 수 없는 치킨에다 말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의사 변호사도 망하는 시대이다. 2, 3등도 풀칠하는 시대이다. 성장하면 모두 잘 살 수 있다는 그런 담론이 끝났다. 그런 좌절과 자조가 치킨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새벽은 10대와 20대의 성장판 깊숙이 경쟁의 유전자만 세습한 기성세대가 열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머니투데이 유병률 배소진 이재원 박다해 기자 sojinb@


댓글 1
  • 최신철
    가슴이 답답해 지는 우리 사회의 진한 어두운 그림자네요 나라는 잘 살지라도 국민이 점점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줄 리더를 찾는 것이 우리의 할 일 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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