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저금리·저성장 삶을 뒤흔든다]<2회> ②]
7년차 직장인 이승현씨(33·경기 화성시)는 5000만원을 호가하는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차량을 지난해 말 2500만원에 팔았다. 원금유예 할부기간인 3년이 지나고 잔액 3000만원을 내야 했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차를 팔고도 추가로 500만원을 더 들여 잔금을 치렀다. 3년 전 이씨는 차값의 30%인 1500만원을 선납했다. 3년 동안 매달 낸 39만원을 합하면 총 3400만원을 썼지만 결국 차는 남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5일 원금유예 할부제도를 이용해 다시 4000만원대의 BMW 1시리즈 신차를 샀다. 두 차례에 걸쳐 7000만원 이상을 쓸 예정이지만 3년 뒤 차를 보유하고 있을지는 이씨도 자신이 없다. 이씨는 "3년 뒤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차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집 대신 차를 사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한 칸짜리 월셋방에 살아도 차는 외제차'라는 말은 더 이상 일부 사치스러운 젊은이들을 비웃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 힘든 현실이다.
2~3년 전만 해도 5000만원 이상의 고가 자동차가 주력이었던 수입차업체가 최근 2000만~3000만원 수준의 저가형 모델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젊은층의 소비 패턴 변화를 간파한 수입차업체가 제품라인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젊은 세대의 '마이카' 현상은 국내차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현대차에 따르면 2012년 국내에서 판매한 50만대의 승용차와 SUV(스포츠형 다목적 차량)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15만대를 20~30대가 샀다. 준중형급인 아반떼(4만대)가 판매 1위지만 대형차에 속하는 그랜저(1만6000대) 판매량도 못지않은 게 눈에 띈다.
집보다 차, 국내차보다 외제차, 소형차보다 대형차를 선택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심리를 허영심으로만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이런 심리의 이면에는 내 집 마련에 대한 뿌리 깊은 좌절감이 박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10년 들어 집값이 게걸음을 하고 있지만 서울 소재 85m² 아파트 기준으로 3억~6억원을 오가는 집값은 여전히 월급쟁이가 넘보기 쉽지 않은 경계다. 집값의 80%에 육박하는 전세값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현대차의 신형 제네시스를 구매한 최장민씨(33·인천 계양구)의 경우도 4년 전 결혼하면서 부모와 분가했다가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 못 해 올해 초 다시 합가했다. 최씨는 합가하면서 돌려받은 전셋값으로 차를 샀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최씨 같은 25~44세의 '캥거루족'은 1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2000년 80만명 수준에서 50% 늘었다.
서울 마포구 소재의 회사를 다니는 장동수씨(27)는 지난해부터 낯선 사람 두 명과 한집에 살고 있다. 당초 직장 근처 집을 알아봤지만 전용면적 25m² 원룸이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이라는 얘기에 포기했다. 결국 서울 서대문구에서 보증금 없이 월세 90만원인 방 세 칸짜리 아파트를 찾아 인터넷에서 알게 된 3명과 함께 3분의 1씩 내고 있다. 장씨도 지난해 말 남는 보증금으로 2500만원짜리 폭스바겐 차량을 질렀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대체소비'라고 설명한다. 소유하고 싶은 재화가 너무 비싸 소유는커녕 임대나 공유조차 불가능하게 되면 아예 포기하고 다른 것을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60대 이상 부모 세대와 달리 2030세대에게 집이란 어쩌면 평생 소유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절망감과 같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아등바등 내 집 마련에 성공한 4050 선배 세대가 60대 이상 부모 세대와 달리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다는 점도 2030세대의 내 집 마련 신화를 깨는 요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기준 50대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21.6%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에 빚을 내가며 집을 산 40~50대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낭패를 보고 있는 것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성균관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는 "결국 문제는 분배되지 않는 재화"라며 "2030세대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더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하우스푸어로 살 바에 어느 정도 즐기면서 '카푸어'로 사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집 대신 차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집 대신 차를 권하고 있다는 얘기다.
머니투데이 심재현기자 ur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