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한국 사회를 뒤흔든 경제위기 때마다 눈물을 흘렸던 ‘개미’들이 변하고 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경제환경과 불안한 노후에 경제교육 현장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지식 무장에 나선 것이다. ‘경제형 인간’ 대열에 합류하는 세대의 폭도 넓어졌다. 특히 부동산경기 침체로 부모세대처럼 ‘뻥튀기’로 운 좋게 돈을 벌 수도, 저금리 흐름 속에서 적금에 기대기도 어려워진 젊은 세대가 ‘난세’를 이기기 위해 더욱 더 전투적으로 변했다
금융감독원이 2002년부터 시작한 금융교육은 2012년까지 누적 참가인원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2007년까지 참가자의 증가 폭이 미미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2008년 8만2346명으로 훌쩍 뛴 이후 2009년 13만명, 2010년 19만명으로 50%씩 늘었다. 지난해에는 27만명에 달했고 올해도 4월 기준으로 이미 7만2894명을 넘어섰다. 전년 동기(4만9000명) 대비 49% 급증한 수치다.
한국은행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금요강좌는 유명인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금요강좌 신청자가 몇 명이냐”던 질문이 올 들어 “몇 분 만에 신청이 마감됐느냐”로 바뀐 것은 경제교육 수요의 가파른 증가세를 반영한다. 370명 정원의 금요강좌는 접수 마감까지 채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마감이 1시간30분 정도로 길어지는 경우는 대학생 시험기간이 유일하다. 올 5월까지 금요강좌를 들은 사람은 6449명. 강의 종료 후 강사에게 달려가 개별 질문을 하는 것도 흔한 광경이다.
저금리 기조에 주식시장마저 잠잠하면서 증권사 등에서 주말에 여는 각종 경매·투자 특강 교실에도 재테크를 위해 휴일을 반납한 젊은 세대가 구름처럼 몰려 발 디딜 틈이 없다. 유료 강의도 예외가 아니다.
조흥균 한국은행 경제교육팀장은 “2004년 카드대란 때에는 강의 내용이 합리적인 소비 등 일반적인 경제상식 배우기 수준에 머물렀다면, 금융위기 이후에는 강의 주제가 금융구조나 상품 등으로 전문화되는 경향이 확연하다”고 말했다.
‘조기교육’과 ‘늦깎이 공부’ 바람도 뜨겁다. 월급봉투를 받아든 이후 경제에 눈을 뜬 이전 세대와 달리 “어린 세대의 돈에 대한 관심은 태어나면서 시작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금감원이 방학기간 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금융캠프’ 참가자는 2008년 300명을 훌쩍 넘긴 뒤 2010년에는 400명, 2012년에는 700명을 넘어섰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방문 강의가 진행되는 금융교육 프로그램에도 각 학교의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최근 초등학생 캠프에 참여한 강사는“초등학생의 질문이 20년 전 대학생이 하던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과거 은퇴와 함께 경제 현장을 떠났던 실버세대의 재테크 관심도 사회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