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덕동에 사는 김미정 씨(37)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 아들과 3살 딸을 둔 전업주부다. 중견기업 과장인 남편의 연봉은 6000만원. 세금을 떼면 월소득으로 450만원가량 들어온다. 2년 전 6억5000만원의 전용 84㎡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3억원을 대출받았다.
매달 주택담보대출금 180만원, 학원과 어린이집 등 사교육비 100만원이 고정적으로 나간다. 시부모님 용돈, 경조사비를 제외하면 네 식구의 생활비가 빠듯하다. 작년부터 재취업 자리를 알아봤지만 30대 기혼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은 일용직과 임시직뿐이었다. 김씨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축은커녕 대출원금을 갚기도 버겁다”고 말했다.
세계 1위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14일 발간한 ‘제2차 한국 보고서 신성장 공식’에 나타난 2013년 한국 중산층의 모습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한국 재창조 보고서’ 이후 15년 만에 내놓은 한국 보고서다. 맥킨지는 당시 경제위기 해법으로 서비스산업의 전면적 규제 완화를 제시했다. 이번에는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악의 축인 가계부채와 교육비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장기침체라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ㅇ 한국의 가난한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산층의 부채상환비용을 가계지출에 포함할 경우 55%가 적자 상태로 나타났다. 공저자로 참여한 리처드 돕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GI) 소장은 “한국의 주택담보 대출은 만기가 10년 이내로 짧아 매월 원금 상환 규모가 크다”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용을 포함하면 한국 중산층의 절반이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가난한 중산층”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연소득 3만7000달러(약 4200만원)인 중산층의 비율은 1990년 전체 인구의 75.4%에서 2010년 67.5%로 줄었다. 매달 지출이 수입을 초과해 적자를 기록하는 중산층 비율은 같은 기간 15%에서 25%로 확대됐다. 주로 주택융자 상환금, 자녀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학원비와 과외비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다. 한국의 가계 총저축률은 19%에서 4%로 급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치다.
ㅇ 집값과 사교육비로 이중고
맥킨지는 “한국 중산층은 높은 주택 가격과 대출비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 주택 가격은 연소득 대비 7.7배로 호주와 영국(6.1배) 미국(3.5배) 캐나다(3.4배)에 비해 높다.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4%로 미국(25%)의 3배에 가깝다. 가계 부채 중 주택관련 대출은 53%로 미국 가구의 평균 2배를 웃돈다.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의 90%가 변동금리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금리 상승시 이자부담이 급등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다. 주택 가격을 통제하고 은행 시스템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담보인정비율(LTV)도 주택융자 비용을 늘리는 원인 중 하나다. 집값의 80~90%에 달하는 대출금을 융자받으려면 LTV 상한 50%를 초과하는 대출에 대해 약 연 4%포인트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하는데, 이런 금리는 미국의 2배 수준에 달한다. 대학입시에 투입되는 사교육비도 문제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해 평균 퇴직연령(57.2세)에 은퇴한 근로자의 평생소득을 순현재가치(NPV)로 환산하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들보다도 낮다. 대학 졸업자가 평생 벌어들이는 총소득이 투자한 교육비용보다 낮다는 의미다.
ㅇ 30대 직장여성 65% 비정규직
보고서는 OECD 국가의 맞벌이 가족 비율은 57%, 한국은 44%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30~39세 사이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전체 평균(57%)보다 15%포인트 낮다. 일을 하더라도 65%는 임시직, 일용직이었다. 여성의 직장 복귀를 지원하는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미미한 실정이다.
맥킨지는 “여성들이 교육수준, 경력과 상관없이 시간제, 저숙련 근로자로 전락했다”고 했다.
맥킨지는 한국이 성장하려면 △중산층 가구의 재정 건전성 강화 △보건의료·사회복지·금융·관광 등의 서비스 역량 개선 △중소기업 강화 △여성 노동참여 확대와 출산율 하락 저지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한국은 수년째 성장과 정체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며 “중산층 이하 주택, 사교육 지출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도입해 새 판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