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학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거 참석한 제13회 세계지식포럼이 사흘간 일정을 마치고 지난 11일 막을 내렸다. 글로벌 경제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번 지식포럼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졌다. 포럼에 참가한 석학들은 위기를 넘어 위대한 도약을 위한 진단과 해법을 쏟아냈다. 이번 지식포럼에서 석학들이 제시한 10대 화두를 요약했다.
① 지식 확산 `전달` 에 달려
선진국이 후진국에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시대는 지났다.
다극화 시대에는 지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Delivery)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각 나라 지도자들이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정책 방향과 실행 프로그램까지 다 가지고 있지만 결과를 내지 못하는 건 효과적인 `전달`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며 `전달`이 지식의 요체라는 점을 일깨웠다.
김 총재는 효과적인 전달을 수행한 핵심 인재 머릿속에 든 노하우를 끄집어내 광범위한 전달 품질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② 퍼펙트스톰 해법은 리더십
내년 글로벌 경제 앞에는 적지 않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퍼펙트 스톰(초강력 태풍)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글로벌 경제 복병으로 유로존 붕괴, 미국 경제 불황, 중국 경착륙, 이머징마켓 침체, 중동 무력 충돌을 꼽았다. 그는 다섯 가지 불안요인 가운데 하나라도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면 2008년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퍼펙트 스톰을 피하려면 각 나라 지도자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로존을 예로 들며 리더십이 작동하는 게 쉽지 않다는 회의적인 진단도 내놨다.
③ 위기일수록 성장에 초점
이번 세계지식포럼은 미국 중국 유럽 등 글로벌 경제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위기 해법은 긴축보다는 완화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환자(유럽)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피를 더 뽑아내야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는 건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환자에게 다이어트하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긴축은 답이 아니라고도 했다. 어려움에도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유럽 정상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에스코 아호 전 핀란드 총리는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 대한 단일 시장화가 성장 해법"이라고 조언했다.
④ 삼성같은 기업 10개 만들라
대선을 앞두고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대ㆍ중소기업 상생 논쟁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석학들 간 토론도 지식포럼의 하이라이트였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미국 월가와 정치권 간 유착을 보면 한국 대기업 지원 정책이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을 뛰어넘는 사고 전환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는 "삼성 LG 같은 대기업을 자랑스러워할 것인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삼성 같은 개업을 10개 이상 만들어낼지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⑤ 1등 집착말고 혁신하는 3등
`티핑포인트` `아웃라이어`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자 맬컴 글래드웰 더 뉴요커 매거진 저널리스트는 "모두가 1ㆍ2등이 되려고 경쟁하지만 3등이 최고 성공을 거둔 예가 많다"며 사고의 틀을 깰 것을 주문했다. 소련 아이디어와 미국 기술을 실전에 적용한 것은 이스라엘이라며 혁신하는 3등이 1ㆍ2등보다 앞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약자의 역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글래드웰은 평가했다.
글래드웰은 "새로운 기술로 차별화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하면서 약자의 역설이 성립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⑥ 한국미래 인재투자에 달려
세계적 석학들은 글로벌 위기에도 한국 경제가 나름대로 방어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으니 "미래에 투자하라"고 입을 모았다. 또 가장 큰 투자처는 `인적자원`이라는 조언이 잇따랐다.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는 한국 성장률을 더 높일 수 있는 6대 과제 중 하나로 인적자산 활용을 꼽았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특히 "대학 진학률은 90%에 이르는데 고등교육 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밑돈다"며 한국 정부가 고등교육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⑦ 복지 개혁해야 복지가 산다
유로존 위기 극복은 이번 지식포럼에서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유럽 정상들은 20년 전 유로를 출범시키면서 너무 안이하고 낙관적인 기대를 가진 것이 위기를 불러왔다며 어렵더라도 서둘러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전 스페인 총리는 "유럽식 복지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복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존 브루턴 전 아일랜드 총리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 일본 한국도 20년, 25년 후면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될 테니 미리 개혁할 것은 개혁하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⑧ 창업국가 되려면 실패 인정
한국 경제가 더 도약하려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데이비드 드러먼드 구글 수석부사장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신생 기업이 커갈 수 있다"고 단언했다. 실패를 경험의 흔적으로 쳐주는 실리콘밸리 문화가 구글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클 수 있는 비결이었다는 것이다.
창업에 리스크가 뒤따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다시 기회를 주는 투자자가 많이 나오는 선순환이 돼야 한국이 창업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⑨ 혁신은 역발상에서 나온다
국가와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번 지식포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가운데 하나가 `혁신`이다. 세르게이 네티신 인시아드 MBA 교수는 기업들이 `혁신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네티신 교수는 "혁신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실패를 키운다"고 분석했다. 그는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만들어내는 애플ㆍ구글만 혁신기업이 아니라 델과 자라처럼 기존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역발상에서 혁신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모델 역발상은 모방하기 어려워 오히려 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⑩ 운동하듯 `행복 트레이닝`
이번 포럼에서는 지식 위기극복 혁신과 같은 담론과 함께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에 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행복 어드밴티지` 저자 숀 아처는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서 성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처 작가는 매일 운동을 하듯이 주위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습관을 통해 `행복 트레이닝`을 하라고 조언했다. 지속적인 행복은 외부 환경을 받아들이는 내 생각에 있다는 것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저자 토드 부크홀츠 하버드대 교수는 "치열한 경쟁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며 반기를 들기도 했다.
[황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