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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를 무결점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게시일
2005-02-18
설 명절 기간 중 등을 대고 근무하던 직원이 한 밤중에 잠을 자듯 세상을 등졌다.
…심근경색…

초등학생인 막내의 비명 섞인 절규와 아내의 멍한 눈길을
보면서 이미 떠난 사람과 남은자의 역할에 대한 구분이
너무도 명확함에 놀랐고 젊은 나이로 홀로 간 망자 앞에 모두인생은 덧없는 것이라 주지 시키듯 말을 한다
어울림과 술, 책상과 전화통, 미움과 사랑까지도….
하지만 돌아서면 화투판에서 껍질 한 장으로 맘을 졸이고
서로 다투기도 하는 것이 또한 산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특권이다. 아픔 속에서도 순간순간 잊어버리고, 웃고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스스로 너무 메스꺼웠다.

억지로 마신 것은 아니지만 술에 몸이 쓰러지고 집에서
식구가 나를 데리러 나왔다 집에 가는 길 내내 무언가
토해내고 싶은 속에서의 덩어리가 계속 안에서만 울렁인다
집에 돌아오니 큰놈은 거실에서 TV를 보다 잠이 들고 둘째는
동그마니 앉아 술취한 아비의 눈을 바라본다…. 또 괜히
서러워진다 둘째의 걱정스런 눈을 보니 귀바퀴를 찢고
또 자리를 비워버린 그 네의 철부지 막내딸 울음이 들려온다. 차마 둘째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들어가 이불을 쓰고 울었다 눈물이 목을 타고
가슴으로 들어가 휭휭 소리를 내는 속을 휘집어 놓는다
그제야 그동안 속에서 울렁이던 덩어리가 토해진다 꺽~꺽이며 눈물과 콧물 덩이가 되어 쏟아진다 얼마나 가슴을 안에서부터 버리고 있었을까 등을 토닥이는 손을 느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느꼈다.
“아…빠!”
언제부터일까 방문을 열고 들어온 둘째가 제 어미와 함께
그렁그렁한 눈으로 침대에 올라앉아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아빠~’ 그래 난 너의 아빠인게 맞지…. 곁에 있는 당신의
남편이고 지금은 주무실 개운동 부모님의 둘째 아들로 40년을 살고 있는게 맞지…. 하지만 그 다음은….
그렇게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모든 게 꿈인 듯 싶어 거울을 본다.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과 독버섯처럼 부풀은 두 눈에 핏발이 가득하다.
분명 어제 마신 술은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화장대 위에 구겨진 채 버려진 손수건과 목이 잠기고 퉁퉁 부은 얼굴에는 떠난 자를 보냈던 어제의 서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난 또 그렇게 남겨져 밤새 그가 던져놓은 무거운 짐을 꿈속
에서도 눈물로 부렸나 보다.

영안실 무거운 공기속으로 다시 들어서니 밤새 고생한
동료들이 벌건 국물에 밥을 말아 한 술 뜨고 있다 과장의
권유로 국물이나 한 사발 먹으려고 부탁을 하니 곁에서
과장은 밥을 털썩 말아버린다.
억지로라도 밀어넣자 싶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째진 속으로
술술 빨려 들어간다.
‘이래서 산사람은 살기 마련이라는 모양이다’ 싶으면서도 또 다시 남겨진 아이의 얼굴들이 보이고 부인이 보이니
오히려 입을 벌려 떠넣는 모습이 죄스럽다.

아! 나(我)란 어떻게 항상 등과 배를 번갈아 바닥에 깔고
하늘과 땅을 딛고 지고 사는가!

지키고 앉은 빈소에는 어제의 익숙한 얼굴들이 이틀째
빈번이 보인다
그들도 나처럼 어젯밤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며 잠이
들었을테고, 동료로부터 남겨진 삶의 짐을 의무처럼 옮기느라 잠을 설쳤을게다
저녁이 되니 동료들이 서울에서 많이도 내려온다. 그간 알고 지내던 분들이 진실 확인하듯 와서는 한결 같은 표정으로
저마다의 가슴속에다 말을 쏟아낸다.
“지랄 같은… 적당히 좀 살지…”
새벽같이 시신은 부검을 위해 서울로 떠났고 떠난 원주에는
부슬부슬 처량맞게도 겨울비가 내린다. 서울로 향하는 도로는 ‘차작차작’거리며 망자를 따라갈 것이고 잦은 출장으로
익숙한 서울길임을 그는 알게다. 또한 거슬러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은 다시 한번 죽은 후에 처참히 찢겨 오리라는 것을
지레 알고 있을게다. 아니 그것이 서러워 빗물을 몰고 달려
가고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같이 간 사람들은 가운을 입은 낯설은 사람들 앞에 그가
속안을 들춰 보이고 억울함을 호소하리라 기대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난 지금까지 알고있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돌아온 그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외지에서 당한 참혹한 모습을 거짓없이 보여주었나 보다
입관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막내딸은 빈소의 길다란 복도에
피빛 울음을 뿌렸다.
바라보던 서로가 운다… 등을 돌리고… 안경을 내리고…
창에 매달려 울고 천정을 바라보며 들썩인다
그렇게 우린 병권이 헝아를 두 번째 죽이고 울었다.

장지와 路祭 일정이 정해지고 써야 할 물건을 미리 차에
실어 놓았다
그가 가져갈 물건도 아닌 것이 승합차에 그득 담기고
은박매트는 번질거리며 그 물건 하나하나를 차 안으로
혓바닥처럼 받아들였다. 작년여름 우리들이 자기를 함께
깔고 앉아 길거리 점심을 먹던 그 때를 아느냐고 묻는 듯
싶었다.

내일이면 발인이다
하늘 닿는 곳에서 6자는 족히 더 들어가 그 안에서 숨을
쉬게 될 것이고 그 안에 하늘을 만들어 별도 만들고 달도
그려 넣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보다도 먼저 모질게
마친 생 속에 유일하게 살을 섞었던 피붙이 식구들의 이름을 간절함 만큼 빼곡히 채울지도 모르겠다.
잠을 자야 한다 내일 그를 보내려면 억지로라도 자리에
누워야 한다
내 집 천정에도 별이 뜬다 구슬픈 겨울비 속에서 투명한
별들이 꿋꿋하게 박혀있다
그날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시린 별처럼 그렇게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이다 질척한 차바퀴 소리가 아파트 베란다를 차갑게
채우고 있다 제 일어나 마지막 보내는 날을 준비해야 한다
면도를 할까?
거울을 보다가 그냥 돌아섰다 왠지 혼자 맨들거리는 얼굴로
사람들 속에 묻혀있을 것이 부담 될 것 같았다
어젯밤 부슬거리던 빗줄기는 진눈개비로 변해 거리에 작은
고랑을 만들었고 가끔 뭉쳐있던 파편이 지나가는 서로간의
차벽에 튀어 흔적을 나눈다. 그에게 나도 이런 원치않는
흔적을 남긴 건 아닐까? 세차를 하듯 깨끗이 지워질 수
있는 기억이라면 좋을텐데….

벌써 동료들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오늘 또 한없이 슬픈 아이의 울음을 들어야
할 것이고 가슴으로 동료를 묻어야 한다는 아픔을 알고
있기에 그들은 말이 없었다.
두 번째 路祭를 지낼 사무실로 먼저 가 그의 책상을 정리하고 평소에 한번 안 한 걸래질을 했다. 누런 먼지가 걸래에 묻어 시커멓게 드러나고 쓰러지던 날까지 다듬었을 시그마
자료들이 자꾸자꾸 튀어나온다 그렇게 6시그마 관련 자료들이 널려있다…
책꽂이를 거의 다 차지한 시그마 책들과 관련 자료들…
파티션 위에는 그의 사진과 이름이 투명한 아크릴 속에서
파란 남방을 입고 개구장이 모습 같은 얼굴로 인사하듯
바라본다.
‘형! 잘 가’
그리고 흰국화 다발을 올려 놓았다.

잠시 뒤 장의차가 도착하고 영정을 모시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책상위의 사진과 맏상주가 안은 영정이 만나
서로가 어색하게 그 안에 있는 이유를 묻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이 사람아 왜 거기에 있는가? 이리 오게!", "아니지
자네가 이리 와야하지 않은가?" 그렇게 마주보고 있는 서로를 부르고 있는 동안 아내는 의자에 걸쳐놓은 그가 입던 점퍼를 들어 얼굴에 부비고 냄새를 맡는다
상주는 또 들썩이며 눈물을 쏟고 막내 딸 아이가 작은 소리로
아빠”를 부른다.
뿌연 눈물속에서 우리들은 병권형을 세번째 죽이고 있었다.
창 밖에는 아직도 눈이 내린다.

선도차량을 좇아 그가 남을 홍천땅으로 향했고 도로 위를
달리는 내내 눈은 따가웠다
어느덧 내리던 눈발은 나뭇가지위에 차분히 멈추어 섰고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던 여러대의 차량이 시위하듯
한곳에 모였다.
검은 연기를 콱콱 토해내며 포크레인은 큰소리로 돌덩이
산을 파 헤친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덜어놓은 흙더미 위에 올라
돌덩이를 골라내느라 바쁘다
작은 골짜기에 준비해온 천막이 쳐지고 휴대용 버너에는
커다란 곰솥이 올라앉아 벌써부터 허연 김을 내뿜는다.
이제 우릴 떠나 보내고 이곳에서 지낼 망자를 위한 잔치
준비가 끝난 것 같았다.

소복하던 눈꽃은 남은자의 눈물과 한숨에 녹아버리고
곳곳이 질척하게 변해버렸고 술병을 들고 무리지어 여기에
홀로 남기고 갈 그를 위해 잔을 덜고 있다.
또 한번 잔솔에 남아있던 눈덩이가 유족들의 울음 소리에
떨어지고 별과 달과 한(恨)을 담은 관이 그의 세계로
들어간다.
하나 둘씩 등을 돌리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어느새 모두들 방관자처럼 저마다의 사연으로 그러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억지로 참는 울음을 “꺽꺽” 토해 댄다
이제 우리가 그를 처음으로 그의 세계에다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처(妻)인 형수가 별과 같은 흙을 뿌리고
맏상주가 그 속에 환한 달을 심었다
그 위로 막내 딸이 눈물로 피와 살을 섞어 아빠의 얼굴에
진한 흙을 덮었다.
”아…빠”
목화솜 같은 하얀 소복들이 쓰러지듯 끌려 내려오며 절절히
눈물 씨앗을 떨군다.

벌써부터 ‘철컥’ 거리며 포크레인의 관절 마디마디에서는 곡 같은 정율음이 나머지 주위를 메우고 있었다.

술판이 벌어지고 벌건 육게장 그릇에 밥과 국이 섞여 얼큰한 안주로 등장한 즈음 친구들은 엄지 굵기의 작대기를 들고
회다지를 위해 이제 보이지도 않는 망자의 배위에 섰다
“우리 친구 병권아! 왜 너가 먼저 가야하니… 열심히 사는
사람 먼저 데려가는 게 하늘의 법이라면 그런 개법이 어디
있단 말이요… 병권아”
선소리꾼 친구는 마지막에 그렇게 친구의 이름을 묻고
있었다…

회사 동료들이 그 뒤를 이었고

~아버님전에 배를 빌고 어머님전에 살을 빌어
~ 에야 호리 다갈고~
~하느님전에 명을 빌고 칠성님전에 복을 빌어
~ 에야 호리 다갈고~

선소리꾼의 구슬픈 장단에 맞춰 그들은 후창을 하며 춤을
추듯 다짐 발구름을 한다.
이로써 이제 망자와 산자간에 확실한 벽이 생기는 것이고
매끄럽게 다져진 자리 위로 리어커 한 대 분량의 흙이 쏟아져
순식간에 하늘 같은 지붕이 만들어졌다. 사방으로 창을 낸 듯
돔형의 지붕 위에 한식 때면 따뜻한 이불 같은 떼가
입혀질게다
아래쪽에는 실개천 얼음 밑으로 조그맣게 물이 흐르고 그
기운을 받아 봄이 되면 새소리와 바람으로 파릇히 싹을
틔울텐데 그 소리에 깨어 그에게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포근함과 꿈, 사랑이 함께 움텄으면 싶다.
돌아가며 제를 올리고 직장 동료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소망하듯 일에 대한 짐으로 아둥바둥 거리지 말고 마음 편한
곳에서 편히 지내라 얘기한다.

발바닥에 한 웅큼의 진흙을 묻혀 서너발치 내려서니
구석구석에 박혀 설움 복받친 울음을 울던 직원들이
하나 둘씩 돌아온다.

이제 우리는 산자와 죽은자의 길을 지키며 돌아가야 한다.
가져 갔던 그대로 다시 차에 실었다 죽은자를 위해 특별히
남겨놓는 것은 없었다.

병권이 형을 남기고,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짝을 맞춰
차에 나눠 탄다. 녹아버린 농로를 타고 황토빛 설움을
바퀴에 묻혀 길게 자국을 남기며 앞차를 따라 하나 둘씩
빠져 나간다.
원주로 향하고 있다.

일부러 뜨겁게 물 온도를 맞춘 후 정수리 위로 한참을
받아낸다.
아직도 진한 흙내가 가랭이를 타고 욕조의 배수관으로
흘러 들어가는 듯 욕실 전체가 매캐한 내음으로 꽉 찬다
이제부터 숨도 쉬지 않는 듯 잠 속에 빠져야 한다 가끔은
내가 불안하여 깰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금새 다시
잠들어 어서 이 하루를 내 잠 속에서 재워야 한다.

그렇게 난 마지막 형을 보내는 날 꿈 속에서 잠에 지친
얼굴로 배웅을 했다.

지루한 명절 연휴가 온몸을 서리 맞은 배추잎처럼 무르게
만들고 아흐레만에 출근한 오늘 비어버린 책상 위에
그전처럼 커피 한잔 올려놓고 자리에 앉아 그가 바라
보았을 돼지저금통을 만져보았다....누구를 위해 이 저금통의 공간이 동전으로 꽉 차 있는걸까?
예쁜 사기 돼지저금통은 주인을 잃었으니 앞으로는 다른
누구의 도움으로 배를 채울까?
아니면 주인을 따라 스스로 부서져 뜻을 지키게 될까?

아직도 책상 위에 있는 그의 이름과 앳된 모습의 사진을
투명 아크릴 판에서 잡아 빼어 혼자 계단을 타고 내려가
잣나무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태웠다.

이제 그는 정말 이 곳에 없다.

돌아보면 골 싸매고 앉아 고개 숙이고 있던 그가 없다.

소주 한잔에 취해 눈을 위로 치뜨며 애기 같은 웃음을 띄던
병권형이 이제 없다

슬리퍼 절절 끌고 들어오며 “춘사야”라고 부르던
키 조그맣고 새까만 형이 없어졌다

매일같이 손에 쥐고 다니던 수첩을 이곳에 남겨두고 그 형은
재처럼 연기처럼 하얗게 떠났다.

식은 커피잔 올려진 자리에 빈 이름과 투명 얼굴을 남겨놓고
이제 병권형은 없다.

2005.2.14일 병권이 형 보낸 자리에 차 한잔 올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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