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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이 지분 96% 보유

게시일
2004-07-29

①일하는 사람이 주인인 SAIC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는 5번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쯤 달리면 푸른 태평양을 끼고 있는 샌디에이고를 만난다. 지난해 12월18일 샌디에이고 북쪽 외곽에 들어서니 마치 대학 캠퍼스처럼 야트막한 높이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기업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연구개발과 시스템 통합,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첨단기술회사인 사익(SAIC·Science Application International Corporation) 이다. 한국인에게는 뒤에 있는 이동통신의 원천기술 보유자인 퀄컴의 로고가 더 눈에 들어오겠지만, 미국에서는 사익이 더 유명하다.

세계 150여개 도시에서 4만여명이 일하고 있는 사익은 지난해 4월 미국 경제·경영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미국 500대 기업 중 288위에 올랐다. 1999년 이후 5년 사이 59계단이나 뛰었다. 미국에서 ‘성공’과 동의어로 여겨지는 ‘포천 500대 기업’의 순위가 말해주듯 사익이 지난 69년 창사 이래 34년간 보여준 실적은 놀랍다. 특히 2002년 미국의 대기업 매출은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6%나 줄었지만, 사익은 59억달러(약 7조원)로 한해 전보다 2% 늘어났다.

하지만 미국에서 사익이 유명한 진짜 이유는 특유의 ‘종업원 소유제’ 때문이다. 사익의 철학은 “회사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이 회사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사익의 종업원 지분은 96%(전직 20% 포함)에 이른다. 나머지는 경영진이 3%, 외부 컨설턴트가 1%씩 갖고 있다. 회사 설립 초기 100%였던 창업자 지분은 이제 1.3%로 줄었다. 사익이 종업원 소유회사가 된 것은 창업자인 로버트 바이스터 박사의 소신 때문이다. 핵 물리학자인 바이스터 박사는 국방 관련 대기업에 다니다가 관료주의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뒤 사익을 세웠다. 그는 사익에 합류한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새 계약을 따온 실적에 맞춰 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종업원 소유회사 사익(SAIC)의 본사 전경. 사익제공
참여경영이 지속성장 또다른 비결
●일하는 사람이 주인인 SAIC
사업부 독자적 의사결정
말단조직까지 수평구조
모두가 기업가정신 무장
이상주의, 현실접목 성공
여기서 사익의 또 하나의 철학이 만들어진다. 바로 “종업원들이 가질 수 있는 회사 주식은 각자의 회사에 대한 기여와 실적에 비례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성과주의’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사익으로 끌어모으는 원동력이 됐다. 또 종업원 소유제라는 이상주의를 시행하면서도 다른 기업들과의 무한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더욱 강력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면 종업원 소유제와 철저한 성과주의 만으로 사익의 지속적인 성장과 높은 수익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사익은 또 하나의 비결로 ‘참여경영’을 내세운다. 투철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돼 있는 종업원 모두의 헌신과, 회사의 모든 문제를 종업원들이 직접 맞부딪혀 해결하도록 끊임없이 권장하는 참여문화, 또 가장 말단조직까지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는 수평적 관리구조가 서로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익에는 16개의 사업부문이 있다. 그 밑에는 50개의 사업그룹과 1100여개의 사업부가 있다. 각 사업부들은 스스로 이익과 손실을 관리하고, 마케팅과 관련된 결정을 내린다. 이런 시스템은 사익을 시장환경에 맞춰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한다. 바이스터 박사는 “최상층의 한두명만이 아니라 직원들 모두가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유와 책임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이사회 의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익 관계자는 “80세의 고령이지만 요즘도 매일 아침 한시간 동안 조깅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고 그의 근황을 소개했다.

사익은 또 종업원들에게 윤리경영을 각별히 강조한다. 사익의 프로젝트 기획자인 레인 몬트는 “윤리적 모범을 준수하면서 지속적으로 높은 실적을 내는 기업은 드물다”면서 “사익의 성공에는 종업원 소유제를 통한 윤리경영이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사익에서는 노사 갈등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사익에는 노조가 없다. 노조 혐오자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사익 관계자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사익의 종업원 소유제 담당 책임자인 앤소니 비고 부사장보는 “노조는 경영진과 대립되는 것인데, 사익에는 모두가 주인이기 때문에 노조가 필요없다”며 “사익은 경기침체나 회사의 어려움 때문에 인위적 감원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종업원들의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익의 소프트웨어 품질기술자인 폴 세라는 “종업원 소유제는 우리의 자랑”이라고 말한다. 입사 13년째인 내리 쿠퍼도 “종업원 소유제는 단지 주식소유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주는 차원을 떠나 종업원들의 태도를 완전히 변화시킨다”고 강조했다.

△ 창업자인 로버트 바이스터 박사. 사익제공
사익의 성공을 종업원 소유제를 채택한 회사들의 일반적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예외’로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다. 사익이 종업원 소유제와 성과주의, 참여경영이라는 세가지 성공 요소를 절묘하게 조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영위업종이 일반 제조업이 아니라 고도의 지적작업을 수반하는 지식기반산업이고,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전체인력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고학력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중심이 된 독특한 인적구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사익은 “비중은 높지 않지만 사익에 화이트칼러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종업원 소유제는 일반 기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사대립으로 국가경제가 위태롭다고 한탄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책임전가에만 급급한 한국적 현실에서 사익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종업원 소유제만으로 노사화합과 회사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성급할 지 모른다. 실제로 종업원 소유제를 도입한 국내외 기업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종업원 소유제에 의해 모두가 주인이 된다는 것은 자칫 모두가 주인으로서의 권리만 누리려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외면하는 ‘최악의 상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익이 진정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상주의가 안고있는 위험을 철저한 성과주의와 참여경영이라는 특유의 시스템을 통해 창조적으로 극복한 점이다. 창업자의 위대한 결단으로 소유와 경영의 나눔을 통해 노사 평화와 회사발전이라는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 실천하는 사익의 사례는 소유와 경영을 독점하려는 자본가나, 자기권익만 찾는 노조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준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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