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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 이 정도 파업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

게시일
2003-07-02
제목: [OhmyNews] !! 이 정도 파업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


이 정도 파업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차병직 칼럼] 철도 파업, 노조와 정부 양쪽을 보고


“억압이 약화된다고 느끼는 즉시, 수년 동안 소리 없이 쌓였던 힘, 고통이나 모욕감, 원한, 슬픔의 속박에서 풀려나 폭발한다. 이것이 바로 파업의 모든
역사이며, 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 등 철도 구조 개혁과 관련한 법안에 대한 이견으로 파업은 시작됐다. 정부는 즉시 공권력으로 제압했고, 노동자의 시위는 무력 사용에 대한 항의로 명분을 확장했다. 다수 언론의 성원에 힘입어 정부는 법과 원칙이란 이름
아래 강경한 태도로 밀어붙였다. 철도청이 파업 관련자 징계 절차를 시작했다는 소식과 함께, 어느새 노조는 파업 철회를 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그 사이에 문제의 법안들은 깨끗이 통과됐다.

이것은 밤과 낮을 따져 현재로선 모두 2박3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시간으로만 계산한다면 놀랍게도 48시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진행된 사건이다. 앞에 든 시몬베이유의 일구를 음미해 볼 틈이 없다. 그것이 한낱 낡은 고전이나 현실감 결여된
수사에 불과한지, 아니면 오늘 우리 노동자들과 그들을 이해한다는 정부에도 효용을 가지는 것인지. 파업의 불법성과 그로 인한 시민의 불편이나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이유로 노조를 탓할 수도 있고, 정부의 미숙함과 무일관성과 경직성을 힐난할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 있는 것 같지않다.

오히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점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우선, 우리 사회는 이런 형태의 또는 이 정도의 파업을 도저히 용납하거나 견딜 수 없는가?
다음으로, 노조와 정부는 계속 이런 식으로 충돌하고 해결하는 일을 되풀이할 것인가?

노조와 정부 양쪽의 주장을 경청하고 입장을 헤아리고 눈감고 생각해 보면,더군다나 지금까지 이른 경위로 결과를 예측하면, 결국 대세는 정부가 원하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노동자들은 다시 슬픈 파업의 일지를 덮고 일시적 비난과 오랜 위로를 받아야 한다.

파업의 동기는 일단 제쳐두자. 파업을 시작하자 언론에 의해 부각된 사회의 시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의 불편이었다. 열차 운행률이 40%선이라느니, 배차 간격이 3배 이상 늘었다느니, 어지러운 수치는 시민들의 심신을 더 지치게 할 뿐이다. 아무리 교통대란이라 떠들어도 시민들은 참을 줄 안다. 필요한 민주주의의 비용 지출 한도를 내심으로는 모두 계산하고 있다.

누군가 지적했다. 독일 금속 노조는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파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함으로써 49년 불패 신화를 스스로 접었다고. 그러나 독일 금속노조는 4주째 파업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우리는 보통 사나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동자나 노조는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 말의 타당성의 정도는 뒤집어 보면 금방 안다. 그렇다면 정부나 대기업이 약자인가? 새정부가 들어서서 노동자들과 이룬 협상의 결과를 정부나 사용자의 굴복으로 보는
것은 조작된 시각이 아닌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요구 중 겨우 일부가 받아들여진 결과를 우열 판도의 전복으로 보는 건 너무 심한 과장이 아닌가. 아무리 근로 조건이 개선돼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못 가진 자거나 덜 가진 자들이다. 기울기가 조금 덜 가진 자 쪽으로 기울었다 하여 균형이 깨진 것이 아니다. 애당초 우리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의 균형점에 대한 상상이 잘못 됐을 뿐이다.

`노조 지도자를 위한 노동운동은 허용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여전히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계급 속의 계급을 지칭한 것인데, 말하자면 대통령 스스로 더 위에 있는 계급을 자인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솔직한 면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겹으로 싸고 있는 두 계급 중 어디에 먼저 맞서고 싶겠는가. 노동운동을 그렇게 싸잡아 폄하하는 건 경솔하다.

이번 파업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면, 결국 정부가 노조에 요구하는 것은 닥쳐올 변화를 미리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필연이고 대세라 하더라도, 그 변화가 특정 직종 근로자들에게 눈앞의 불이익이나 위협으로 다가선다면 누가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차피 대세라면, 정부는 구태여 조급하게 강압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항상 파업을 반사회적 행동으로 몰아가는 힘이 되는 것은 불법이라는 낙인이다. 요건을 갖추지 못한 파업이 위법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불법이건 위법이건 파업은 노동운동의 수단의 하나다. 국민이나 정부는 불법파업에 담겨 있는 시민불복종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파업할 때 감옥갈 결정도 함께 한다. 물론 노동자들은 불법파업의 정당성의 근거가 국민이나 정부를 설득할 만큼 다져졌는지 잘 가늠해야 한다. 파업은 유효한 도구이기는 하나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철도 구조개혁 법안에 대해 노조와 정부는 서로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장 그 어긋남만 확인한다면 협상과 타결은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노조가 `선복귀 후대화`로 방향을 바꾸면, 정부는 적어도 절차의 측면에서라도 많은 것을 수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파업을 철회하게 되면 그것은 노동자의 패배를 의미하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비슷한 피곤함을 달고 사는 다른 시민들의 압력에서 벗어날 길 없다. 그리고 파업은 불과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와 시민들은 노동자들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하며, 징계 절차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노동 투쟁의 일시적
결말은 결국 슬픔을 나누어 숨기는 일이다.

2003/07/01 오전 10:06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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