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신청하기

이 블로그 친구 신청을 하시겠습니까?

게시판

반전 운동의 위선

게시일
2003-03-25
위선의 뜻을 가진 hypocrisy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말로 ‘무대에서 하는 연기’를 의미한다. 그에 해당하는 라틴어 simulatio는 ‘흔히 속이려는 목적으로 외면적인 특성이나 외양 만을 취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이른바 ‘진보’라는 무대 위에 펼쳐지는 ‘가증스런’ 연기들을 지켜보면서 가슴 속에서 치솟는 역거움을 느낀다. 그들의 몸짓과 말들은 기껏해야 진보의 ‘외면적인 특성과 외양’ 만을 뒤쫓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이 세상에 살았을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위선자의 대표적인 표본이었다. 그들은 자칭 진정한 율법의 수호자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율법의 잣대로 재며, 오히려 율법의 근원의 되는 하나님의 법에는 눈이 멀고 귀가 닫힌 자들이 되었다. 그들에게 진정한 율법의 참 정신이며 참 뜻인 그리스도는 오히려 마귀 들린 이단자에 불과했다.

지금 현실 세계에서 진보와 개혁의 권위를 주장하는 무리들은 고대의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입만 열면 ‘진보’,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며, 하는 짓거리라곤 ‘구악의 옹호’ 밖에 없다. 이들 위선자들은 ‘진보’에 대한 권위를 찬탈하여, 자신들과 목소리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수구꼴통’이란 낙인을 찍고 사회적 돌팔매질을 해댄다.

반전 운동의 위선을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반전주의자’들의 이중 잣대이다.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에 대한 무관심은 그냥 내버려 두더라도, 북한에 대한 그들의 편향된 자세야 말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에 가서 ‘김정일 찬양’을 외쳤던 강정구 교수가 버젓이 토론 패널로 나와 국민의 안목을 흐리는 것은 제쳐 두더라도, 북한의 북핵과 그 시발점인 김대중의 ‘뒷구녕 거래’에 대해 애써 눈을 가리려는 태도는 무엇인가? 왜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에 빠트리고 나라의 존망을 벼랑 끝에 서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가?

미국 탱크에 깔려 죽은 여중생에 대한 애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코를 철사로 꿰어 끌고 가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침묵은 무엇인가? 김정일을 지성과 상식을 겸비한 인물로 보는 것은 진보적 태도이고, 삼천만에 가까운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막고 오직 무뇌아적인 앵무새처럼 같은 찬양 어귀만 반복하도록 한 독재자의 면목에 대한 비판은 수구적인 것인가?

그토록 평화를 사랑하는 수위 ‘진보주의자’들아, 우리의 안보와 번영을 위협하는 북괴의 끊임없는 도발에 대해 눈을 가린 인간들아! 그토록 인간애가 투철하다면, 어찌 우리 품안에 찾아 오는 우리의 혈육, 북한 동포에 대해서는 그토록 냉담한가? 그들에게 조금한 관심이라도 가져 보았는가? 우리 영토 안에서 우리들끼리도 하나로 화합하지 못하면서 북한과의 통일은 환상으로 하려는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두푼 모아 고향 땅의 부모, 형제를 도우려는 외국인들에게 ‘지옥과 다름없다’는 소리를 듣는 이 나라의 진보들아! 진정한 진보를 실천하려면, 진보의 가면부터 벗어 던지고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진보의 염원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리수’에 대한 관용, 프리 섹스에 대한 묵인 등이 진보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진보란 심지어 ‘수구’란 말을 들어도 진정한 가치의 존중과 수호, 거짓과 위선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일 것이다. 과연 ‘반전 운동’만큼이나 ‘북핵과 북한 인권’에 대해 똑 같은 울분과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진보적 위선자들아..
댓글 0
댓글 등록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