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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문화적 유산

게시일
2003-03-24

이라크 위기의 문화유산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이아 문명의 발상지, 수메르· 바빌로니아·아시리아·페르시아·사라센 제국 등 찬란한 역사를 지닌 이라크는 국토 전체가 인류문명의 전시장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런 문화유산의 보고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위기의 문화유산= 실제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 등 다국적군의 무차별 공습은 시아파 회교도의 성지인 나자프·카르빌라 등 많은 유적지를 훼손시켰고, 지구라트도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이런 걱정이 기우만이 아닌 것이 이번 미국의 작전도 엄청난 폭격으로 시작된다. 더욱이 이슬람 건축물 등 주요 문화유산들이 폭격이 집중될 도시의 중심부에 있다는 점도 우려를 더해준다.

대표적인 곳이 수도 바그다드다. 바그다드는 8세기부터 13세기까지 사라센 제국의 수도였다. 이슬람 문화의 중심으로 화려한 역사를 꽃피웠으며, 갖가지 성벽, 이슬람 사원 등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일컬을 정도다.

이 곳 박물관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유산들이 숱하다. 하지만 이라크 병력이 가장 많이 집결된 곳이 바그다드이며, 미국의 대규모 공습이 예상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바그다드 남쪽 바빌론에 있는 세계 7대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정원도 잿더미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정원은 기원 전 5세기 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2세가 왕비를 위해 세웠다. <구약성서>에 전해지던 바벨탑의 원형도 바빌론에 있다. 그런데 사담 후세인의 많은 대통령궁의 하나도 이 곳에 있다.

도굴도 걱정거리다. 문화재 도굴은 물론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이 나라가 미국의 침공으로 혼란에 빠져있을 때 숱한 유물이 도굴로 어디론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고고학자들=<에이피통신>은 최근 고고인류학자들이 미 국방부 쪽에 “이라크를 칠 때 주요 기념물과 유적지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학자들은 가공할 미사일과 첨단 무기들이 인류문명의 요람을 가루로 만드는 사태를 우려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시카고 대학의 맥과이어 깁슨 교수는 “이라크의 문화유산을 없애는 일은 문화적 대학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라크는 단순히 사막이 아니며, 가장 최초로 문명이 일어난 곳으로 최초의 문자, 최초의 문서, 최초의 기념비적 건축, 최초의 예술 등이 나타난 곳”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고고인류학자들은 미 국방부과 국무부 당국자들을 직접 만나 중요 유적지를 상세히 기록해줬고, 앞서 미국방부 쪽도 자체적으로 150곳의 목록을 작성한 바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도 이라크 문화유산의 잿더미 위기 상황을 전하며 세계 고고인류학자들이 미국에 1954년 체결된 ‘무력분쟁시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협약은 군사시설이 주변에 있는 경우에만 문화 사적지 등을 공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103개국이 이 협약에 조인했다. 미국도 조인은 했으나 지금까지 비준은 하지 않고 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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