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더위와의 이별여행
<중부네트워크운용단 집중운용센터 충남기술팀 이근전>
더위와의 이별을 위해 강원도 정선으로 떠났다. 하계휴양소 입소가 결정된 날부터 우리가족 모두가 목이 길어지도록 기다렸던 날이다.
8월 2일, 여행 첫째 날
새벽 6시 15분. 우리가족은 하계휴양소 입소권을 소중히 챙겨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예산을 출발하여 천안을 지났다. 안성, 충주,제천, 영월, 정선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를 바람이 되어 달렸다. 길은 하늘을 뚫을 듯이 높이 솟은 수많은 산들의 목에 걸려있었다. 마치 높은 산들이 풀어진 넥타이를 목에 걸치고 있는 듯 했다. 빽빽한 산속으로 뻗은 길은 그 끝이 없을 듯 했다.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첩첩산중"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곤 했다. 충북 제천 땅에 들어서 새로 난 터널 길을 버리고 박달재 옛길로 차를 몰았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박달재 정상에서는 국민애창가요 "울고넘는 박달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쪽 켠 그늘에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꺼내 늦은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나는 두 딸아이들에게 박달재에 얽힌 사연을 설명해 줬다. 노랫말에 나오는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딸아이들은 나의 풍부한 지식에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껏 폼을 잡았다. 나의 첫 번째 폼이었다.
정선 땅에 들어섰다. 정선읍내를 향해 42번 국도를 달리며 비행기재를 넘었다. 어찌나 높고 험한지 마치 비행기를 타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비행기재였다. 나는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옛날에 정선고을로 부임하는 어느 관리의 부인이 세 번 운 이야기였다. 한양을 떠나 그 멀고 낯선 땅에서 어찌 살까 하는 걱정으로 한 번 울고, 정선으로 가는 남편을 따라 비행기재를 넘으며 멀고 험한 길에 그만 지쳐서 두 번 울고, 세월이 흘러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정든 곳 정선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에 세 번 울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아내도 함께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헛기침까지 하며 또 폼을 잡았다. 나의 두 번째 폼이었다.
점심때가 좀 못 되어 정선읍내에 도착했다. 곧바로 정선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의 정확성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마침 오늘이 정선 5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우리 여행에 잘 되는 뭔가가 있는 듯 했다. 시장 전체를 둘러보고 나서 곤드레나물과 참나물을 샀다. 점심으로 콧등치기국수와 올챙이국수를 사먹었다. 어찌나 맛있는지 후루룩 하고 힘껏 들이마시는 바람에 국수가닥이 콧등을 친다는 그 콧등치기 국수였다. 점심을 먹고 난 우리가족은 모두 콧등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콧등치기 국수가닥에 얻어 맞아서……
정선 읍을 떠나 사북으로 향했다. 석탄문화제를 관람했다. 2004년도에 폐광한 동원탄좌(민영탄광 중 생산규모가 가장 큼) 자리에서 열리는 문화제였다. 석탄을 생산하던 때의 환경과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깊고 어두운 갱도 안에서 검은 석탄을 캐며 머리카락이 희어진 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석탄생산의 모든 것을 실감나게 체험했다. 갱도 안으로 직접 들어가보는 체험은 난생 처음 경험해 보는 짜릿한 추억이었다. 650갱. 해발고도 650미터에 있는 갱도라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지난 날 석탄 캐는 분들이 어두운 갱도 안으로 들어갈 때 이용했던 그 이동용 열차에 타고 지구의 속살 속으로 들어갔다. 싸늘한 기온이 온 몸에 끼쳤다. 설명을 들으니 계절에 관계없이 늘 영상14도란다. 나는 일부러 가족들이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로 시 한 수를 외웠다.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 안도현이 지은 "연탄재"라는 제목의 시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아내와 딸아이들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최고란다. 나는 또 폼을 잡았다. 나의 세 번째 폼이었다.
메이힐스 리조트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발코니에 나서니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다가온 높고 짙푸른 산이 마치 산소생산용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산소공장 같았다. 시원하고 상큼한 공기가 콧속으로 밀려들어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갓 생산한 맑은 산소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무제한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깨끗하고 넓은 산소 풀장 같은 숙소에 우리 가족은 감탄했다.
저녁을 일찍 차려먹고 강원랜드로 가는 순환버스를 탔다.
아내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에 따라 "멀티미디어 음악 분수 쇼"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해발 700미터 고원의 시원한 한여름 밤에 역동적인 음악과 화려한 빛을 배경으로 현란한 물의 향연이 펼쳐졌다. 기묘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물줄기 속에서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신들이 나타나 자신이 주관하는 세상의 평화와 아름다움에 대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했다. 이어서 분수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는 기기묘묘한 형태를 이루며 메시지 내용을 표현했다. 관객들의 감탄이 모여 또 하나의 분수를 이루었다. 우리가족은 맨 앞자리에 앉아 가장 큰 소리로 환호하며 박수를 연발했다. 하늘에서는 별들의 향연이, 고원의 땅에서는 물의 향연이 펼쳐지는 그 시간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최고의 여름 휴가를 즐기는 우리가족의 행복의 향연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 첫째 날 정선에서의 여름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8월 3일, 여행 둘째 날
오전 일찍 순환버스를 타고 414번 지방도로를 달려 함백산 만항재로 향했다. "천상의 화원"으로 이름 붙여진 야생화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만항재의 높이는 1,330미터. 우리나라에서 포장된 도로를 자동차를 타고 넘어가는 고갯길 중에서 가장 높은 고개란다. 울고 넘는 박달재도, 강릉의 관문 대관령도, 설악을 넘는 한계령과 미시령도 우습게 내려다보는 높은 고개다. 정선,태백, 영월 땅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높은 곳이라서 그런지 몸에 닿는 공기가 초가을 날씨 같다. 1,573m 함백산과의 표고차는 겨우 240여 미터. 함백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에서 트래킹을 즐겼다. 삼복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여름의 한복판인데도 그렇게 서늘할 수가 없었다.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나는 또 폼 잡을 요량으로 딸아이들에게 높은 산에 올라오면 태양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 지는데 기온은 반대로 내려가는 이유를 물었다. 높은 곳은 땅에서부터 올라와 도달하는 복사열의 양이 적기 때문이라고 큰딸아이가 선뜻 대답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지구의 복사열은 성층권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오히려 나에게 설명해 줬다. 나는 복사열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 복사열의 도달거리가 성층권에는 못 미친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나는 딸 아이들로부터 호되게 한 방 먹었다. 이번에는 딸아이들이 보란 듯이 으스대며 폼을 잡았다.
나의 네 번째 폼은 실패였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서 화암쪽으로 승용차를 몰았다. 구절양장(九折羊腸) 고갯길을 굽이쳐 돌고 솟구쳐 넘어 소금강에 도착했다. 태초의 지구로부터 얼만 만큼의 시간이 흘러서 저런 기이한 모양이 생겼을까. 깊은 협곡을 구불구불 흐르는 맑은 물은 투명한 유리알이요, 하늘에 닿은 듯 까마득한 절벽은 켜켜이 쌓아 올린 시루떡 같다. 이곳에 사는 신선이 집 앞 정원을 이렇게 꾸며놓았을까? 어느 솜씨 좋은 재단사가 있어 저렇게 마름질한 것일까? 신선과 재단사는 어떤 능력과 솜씨를 가진 재주꾼들일까?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 사람이 사는 세상 같지가 않다. 휘돌아 나가는 계곡,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 층층이 쌓아 올려진 높은 절벽, 배경은 아름다운 수형의 소나무, 채색은 짙푸른 담록. 그림을 그려 걸어놓은 듯 하다.
더위와의 이별여행 둘째 날은 그렇게 천상의 화원과 신선의 세계에서 노닐었다.
8월 4일, 여행 셋째 날
오전 일찍 떠날 채비를 마쳤다.
피로를 풀어낸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청정의 땅 정선에서 만든 소중한 추억을 안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 가족은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겨우 달래고 나서 메이힐스 리조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갓 생산된 산소로 가득 찬 발코니에서 심호흡을 하며. 그리고 KT가족의 하계 휴양소 입소를 환영하는 플래카드 앞에서 "올레 KT 최고"를 외치며. 나는 아내와 딸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얘들아, 이번 여행 어땠니?"
"최고였어요. 아버지 최고, 올레 KT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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