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vs.80 사회, 패자부활은 꿈도 꾸지마 |
허리 휘도록 일하는데 팍팍한 삶 왜?… 상위 20% 소득 독식, 나머지 80%는 피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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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2명을 두고 광주에서 소규모 자영업을 20년 가까이 꾸려 나갔던 51세의 장명수씨. 하나 둘씩 거래처가 끊어지자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전세로 들었던 사무실 건물이 경매로 팔려 나가면서 보증금도 뜯겨 설상가상이었다. 그나마 빚은 남기지 않아 다행이다.
전셋집을 줄여 부인과 함께 음식장사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돈만 까먹기 십상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선뜻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대학 입학을 앞둔 딸아이를 생각하며 우선 주유원으로라도 일해 볼까 하고 며칠을 서성이던 끝에 동네 주유소를 찾았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30대만 직원으로 쓰고 있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특별한 기술도 없는 장씨로서는 윗사람 눈치 안보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이만한 것 있겠냐 싶어 택시 운전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1일 4만원(야간근무 4만3천원)을 회사에 입금하고 기름 값, 세차비 떼고 남은 돈이 하루의 수익이다. 첫 날은 7천원을 손에 쥐었다. 하루 12시간 좁은 차안에 앉아 제때 끼니도 찾아먹지 못하며 손님들에게 시달리다 보면 녹초가 된다. 하지만 운전 아니면 할 것이 없어 3개월째 버티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면서 하루 평균 4~5만원을 벌고 있다. 주야간 교대로 하루 12시간씩 25일 만근을 했을 때 1백만원 안팎의 수입이다. 생활비와 아이 교육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솟아날 구멍이 없다. 이게 사람의 운명이려니 하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고단하다. 막장같은 인생, 꿈을 꾸기보다는 이젠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야 함을 직감한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 노컷뉴스
고개를 들어 같은 또래의 친구들의 삶을 곁눈질해 본다. 지역의 중소기업에 다니던 친구들은 그래도 비교적 안정적인 월급쟁이를 이어가고 있지만 고단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래만이지만 선뜻 만남약속을 꺼려하고, 만나서도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 얘기로 부산하지만 아이들의 학비로 허리가 휘어 있다. 월급 상승은 물가 상승율에도 못 미쳐 10여년 전과 별반 다름없다. 하지만 직장에 붙어있을 수 있어 안도하고 있으나 눈 앞에 다가오는 퇴직 시기에 공포가 서려 있다. 중소기업의 월급쟁이 친구들도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도 ‘죽을 맛’을 하소연하고 있다.
인생 90세,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남은 삶이 무섭다. 노후를 위해 남겨진 재산은 전셋집 달랑 하나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조합주택에 가입했다가 98년 외환위기 사태로 시공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목돈을 날린 이후로 전세를 전전하고 있다. 한 번의 불운으로 내 집에 대한 꿈을 영원히 박살낸 셈이다.
생활고에 찌들려 변변히 신경 써 주지 못한 아이들도 걱정거리다. 학자금 대출이라도 받아 뒷바라지 하겠지만, 취업난의 살얼음판으로 내몰려져 있어 안타깝다. 올해 대학 졸업자 10명 중 4명이 실업자로 남았다.
볕들 구멍이 없다. 20대80 사회(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의 굴레가 옥죄고 있는 걸까? 지난 25일 국세청에 따르면 종합소득세 신고금액 상위 20%의 1인당 소득액은 1999년 5800만원에서 2009년 9000만원으로 10년 사이에 55% 급증했으나, 하위 20%의 1인당 소득액은 같은 기간 동안 306만원에서 199만원으로 35% 감소했다. 이는 자영업자의 소득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증거다.
월급쟁이의 소득 양극화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9년에 근로소득세를 낸 연말정산자 가운데 상위 20%가 받은 급여 총액은 131조1652억원으로 전체 월급쟁이 854만명이 받는 돈의 41.6%를 차지했다. 월급쟁이 상위 20%가 전체 소득액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간 것이다. 반면에 하위 20%는 전체 급여액의 8%만 받았다. 금융회사, 수출 대기업 등의 임금 상승률이 중소기업보다 월등하게 높아지고, 비정규직의 근로자가 늘어난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20대80 사회가 목전에 와 있다. 종소세 신고자의 상위 20%가 총 소득의 71%를 가져갔고, 나머지 80%의 서민들은 빈곤한 삶을 살고 있음이 국세청의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2009년도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총 소득액 90조2257억원 가운데 상위 20%가 64조4203억원으로 71%를 차지했다.
소득 양극화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빈곤층의 양산은 대한민국의 경제구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대기업을 향한 작심 발언은 고환율 정책과 저금리, 법인세 인하 등 서민들을 나몰라라 하며 대기업만을 위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해왔던 현정부 경제정책의 심각성을 되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부의 고환율정책은 수출 대기업에 편중된 수혜를 안긴 반면에 서민들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의 이윤 독식은 월급쟁이의 양극화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마지막 남은 골목상권마저 붕괴시켜 자영업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세상인들은 설 자리마저 원천적으로 봉쇄된 꼴이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은 무너지고 소비의 양극화도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서민들은 생활고의 비명이 높은 반면 명품족의 소비는 사회문제로 대두 되고 있는 실정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회복은 저소득층의 엥겔지수(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크게 높아져 빛이 바래진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값이 급등하고 주가가 오르면서 고소득층은 월급 이외에도 투자소득이 가파르게 불어나 부익부 빈익빈은 더 깊은 골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각적이고 지속적인 대책과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국내 소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하위 20%의 급여생활자는 대부분 비정규직이 차지하고 있다. 중간계층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에 단순 노무직의 일자리는 증가하는 일자리도 양극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성장률 못지않게 성장의 질이 중요하다. 성장의 온기가 고루 돌지 못하는 사회, 1일 지경부가 발표한 4월 수출액 498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무역흑자도 58억달러로 15개월 연속 흑자 소식이 그저 무덤덤한 것은 ‘그들만의 잔치’인 탓이다. 20대80 사회, 월급쟁이도 자영업자도 거대 경제구조 시스템이 옥죄는 패자부활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사회 안전망은 부실하다. 비정규직의 저임금 노동자나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복지사각지대는 여전히 공고하다. 20대80 사회에서는 국가 경쟁력도 공염불임은 자명하다.
[출처] 미디어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