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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난민을 없애는 법 - 박용채 경제 에디터

게시일
2010-10-25
[아침을 열며]고용난민을 없애는 법
 박용채 경제 에디터

 

3274명. 국민은행이 최근 실시한 희망퇴직 신청자 규모다. 국민은행 전체 직원이 2만600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12%에 해당한다. 지난해 KT의 희망퇴직에는 5992명이 몰렸다. 당시 직원이 3만7000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5%가 넘는 수준이다. 퇴직 앞에 붙어 있는 ‘희망’이란 수식어에 일부 ‘강제성’이 묻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고용 측면만 떼어놓고 보면 두 기업은 낙제점이다. 일자리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도 동떨어진다. 하지만 국민은행이나 KT를 마냥 탓할 수도 없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8월부터 2개월반 동안 ‘고용난민시대-일자리 없나요’ 기획물을 연재했다.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시리즈가 끝난 지금도 20대 젊은이는 취업 문고리를 잡기 위해, 30~40대는 구조조정의 불안 속에, 50대 이상은 너무 빨리 도래하는 퇴직에 하루하루를 버겁게 지낸다. 이런 측면에서 ‘고용난민’이란 용어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한다. 

이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기획팀이 내린 대안은 일자리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며, 사회안전망을 더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이들 문제를 풀기 위해 지금이라도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들 해법은 꽤나 지난하다. 우선순위를 정해보자. 요즘 같은 시대에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인력 채용을 꺼린다. 더구나 이를 강제할 수도 없다.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

이런 측면에서 공공의 역할은 막중하다. 고위 관료 출신으로 단체장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안전이나 복지 부문에서 상당수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사회서비스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 고용서비스의 인프라가 외국에 비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은 정부도 인정하는 현실이다.

이의 전제조건은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서비스업은 양적으로 많이 늘었지만 폐해도 많았다. 간병이나 돌봄 서비스, 맞춤형 보육서비스 등은 시장에만 맡겨두면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힘들어져 나쁜 일자리가 된다.

불법 파견 등 불안정 노동을 안정적인 일자리로 바꾸는 것은 더 시급하다. 정부는 고용의 미스매칭 현상을 젊은이들의 눈높이에서 찾고 있지만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지 않는 한 해결은 난망하다.

통상 기업에 효율은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정규직을 줄이고, 그 자리는 사내하청, 용역 등의 비정규직으로 대체한다. 노동계 통계로는 한국의 비정규직은 828만명이나 된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대기업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기업하기 참 어렵다’는 말로 맞대응한다. 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매번 모든 사회문제를 떠안으라고 하느냐는 불만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이명박 정부의 슬로건이 돼버린 ‘상생’과 ‘공정사회’ 주장은 포퓰리즘 측면이 강하지만 거스를 수도 없는 현실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득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명제는 이제 구문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현대자동차에 주문을 하고 싶다. 왜 하필 현대차냐 하겠지만 까닭이 있다. 현대차는 한국 노사문제의 상징적인 기업이다.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한국대표기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더구나 대법원은 최근 현대차의 사내하청 형태의 비정규직 사용에 대해 불법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고용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 

근로자를 ‘가족’이나 ‘식구’처럼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말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대량해고를 무릅쓰고 원청 사용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는 동희오토의 노동자를 껴안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크다. 우리 사회의 일자리 분위기를 180도 바꿀 수 있다. 

정글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부속품’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경영자에게 노동자들은 ‘가족’이자 ‘식구’였다. 이는 시대가 바뀌고, 기업이 커졌다 해서 바뀔 것은 아니다. 근로자와 함께하고,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만으로도 고용난민은 줄어들 수 있다.
  • #경향신문, 오피니언, 사회, 서비스, 일자리, 창출, 가족,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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